1958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런던정경대 국제사 교수이자 역사가인 저자가 30년에 걸쳐 고위 정치인, 군 관계자는 물론 재벌과 KGB 관리 등으로부터 수집한 자료 및 대화와 각국 기록 등으로 소련 붕괴의 순간을 꼼꼼히 복기했다.
역사가에게 소련의 붕괴는 조각이 딱 들어맞지 않는 퍼즐이다.
바로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이 책의 주제다.
소련 내부에서 바라본 관점에서 “소련 붕괴가 불가피했다는 지배적 서사, 즉 서방과 소련 내 반공주의 집단 내부에서 생겨난 서사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저자는 당시 상황을 인간의 이상, 두려움, 열정, 예기치 못한 사태가 전개되며 펼쳐진 드라마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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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최파일 옮김/ 위즈덤하우스/ 4만2000원 |
그러나 그 개혁을 뒷받침하는 구상과 계획은 치명적으로 낡았고, 경제적으로 결함이 있었으며, 기존 경제와 정치체를 내부로부터 파괴했다.
특히 동토에 빛을 가져다준 영웅적 인물로 종종 미화되는 고르바초프에 대해 저자는 개혁과 나라 전체를 계속 통제할 수 있을 유일한 수단인 당 조직을 해체하려는 역사적 오판을 저질렀다고 비판한다.
고르바초프식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경제 혼란과 정치적 포퓰리즘, 민족주의라는 악령에 소련을 노출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그가 시작한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유와 민주화로 가는 관문이 아니라 ‘악성 포퓰리즘’과 ‘민족 분리주의’로 가는 관문을 열었다.
방대한 자료와 기록, 인터뷰 등을 통해 저자는 소련 붕괴에 대한 기존 해석을 하나하나 검증하며, 고르바초프의 통치로 촉발된 ‘퍼펙트스톰’이 내부에서 어떻게 합쳐졌는지 그 원인과 결과를 톺아본다.
해외에서는 변화의 예언자였던 고르바초프가 왜 본국에서는 실패와 무능의 대명사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도 찾는다.
1991년에 등장한 새로운 러시아는 권위주의로 회귀할 운명이었는가. 아니면 안타깝게 기회를 놓친 것인가.
현재의 러시아는 러시아가 무너트리고 차지한 소련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 지도자는 고르바초프였고 지금은 푸틴이라는 것이다.
소련 붕괴 당시와 지금 국제정세는 다르고 많은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났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대제국 붕괴가 시작된 고르바초프의 통치 후반기를 떠올리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구호는 소련 ‘제국’에 의한 ‘러시아’의 희생을 운운하던 옐친의 수사법을 아득하게 일깨웠다.
심지어 소련의 일부 나이 많은 시민은 냉전기에 그토록 신중했던 서방 엘리트들이 더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브레즈네프와 체르넨코, 고르바초프 후반 시대들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결국엔 소련 수수께끼가 우리 시대에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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