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상 미국에서 공연을 하고 세금을 낼 수 없었다.
지금 미국은 수많은 음악이 이야기하는 자유와 개인의 가치를 폐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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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앞둔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그는 내년 4월까지 예정돼 있던 22회의 미국 연주 일정을 전면 취소해 화제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음악이 지향하는 가치에 반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정치인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음악가는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라는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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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츨라프는 미국 연주회를 인권 단체를 위한 후원 공연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22개 공연 주최사 모두가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연주 자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테츨라프는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카네기홀, 런던 위그모어홀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상주 음악가로 활동해온 명망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2019년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며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17년 황금 디아파종상, 2018년 그라모폰상 협주곡 부문 등을 수상하며 여러 음반상을 휩쓸었지만,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이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콩쿠르 입상 경력은 없다.
그는 "콩쿠르에서는 대체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우승하지만,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콩쿠르가 중요한 음악가를 가려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음반상에 대해서는 "연주자의 소셜미디어 활동, 외모, 퍼포먼스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음반상은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테츨라프는 연주를 할 때 음악에 깊이 몰입하며 작곡가의 내면을 전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연주하는 곡에 대한 확신, 작곡가의 내면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열망, 연주하면서 벅차오르는 기쁨 같은 감정들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자, 관객들이 내 공연을 찾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요소들 덕분에 콩쿠르 수상 경력이 없어도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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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는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요세프 수크(1874~1935), 세자르 프랑크(1822~1890), 카롤 시마노프스키(1882~1937)의 작품을 각각 한 곡씩 연주한다.
모두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작곡가들이다.
테츨라프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서로 대조적인 작품을 연주하는 걸 좋아한다"며 "이번에 연주하는 네 곡은 불과 20~25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들이지만, 각각 전혀 다른 음악적 세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낭만적인 영혼을 지닌 작곡가로 인식되는 브람스의 의외의 거칠고 음울한 면모가 드러나는 반면 프랑크의 소나타는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결혼 선물로 작곡한 곡인 만큼, 밝고 아름다운 음악"이라며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음에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크와 시마노프스키의 곡은 프랑스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고, 브람스와 수크는 독일 전통, 특히 수크는 브람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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