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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리포트] 90년대는 '영웅' 00년대는 '스타'…동상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편집자주한 인물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전하기 위해 세운다는 동상. 누군가의 생전 모습을 영원히 박제해 기리는 일은 단순한 조형물 제작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대 대한민국은 누구의 동상을 얼마나 많이 세웠을까. 아시아경제는 1990년부터 이달까지 포털사이트, 지방자치단체 누리집 등에 담긴 실존 인물의 동상 제막식 개최 기록을 분석했다.

'누구를 동상으로 세울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에도 시대적 트렌드가 있다.
사회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가치관과 시대상이 반영된다.
전쟁이 끝나면 전쟁 영웅과 지도자의 동상이 세워지고, 경제가 성장 궤도에 올라타면 인권·노동 운동에 투신한 시민운동가의 동상이 설치된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세워진 동상 215개에도 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편의상 시기를 대통령 재임 기간으로 구분해 동상의 시대적 트렌드를 들여다봤다.


독립운동가·전쟁영웅 동상 많아…숭상의 1990년대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와 전쟁 영웅의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웠다.
학계에서는 이를 남북 분단 상황에서 내부 결속을 다지고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행위였다고 보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풍요로웠지만 정치적 불안감이 컸던 1990년대에도 이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노태우 정부 시기였던 1993년까지 세워진 동상을 살펴보면 제막식 기록이 남아있는 동상 10개 중 9개가 윤봉길 의사, 서재필 선생 등 독립운동가였다.
나머지 1개는 경상남도 남해군에 건립된 박진경 대령 동상이다.
당시 건립 취지는 '공비소탕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는 것이었으나 그가 제주 4·3사건의 학살자로 비난을 받으면서 지금은 동상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1990년대 후반 김영삼 정부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1995년부터 이봉창 의사, 강감찬 장군,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건립됐으며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에서 순직한 고(故) 이병희 상사 동상이 세워졌다.


같은 시기 북한도 동상 제작을 통해 지도자의 우상화와 내부 결속에 몰두했다.
1990년대 한국 언론은 1995년 김정일 체제의 우상화를 위한 동상이 새로 건립됐다거나, 북한 도처에 김일성 주석 동상이 60여개 있으며 흉상을 포함하면 수만 개에 달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민간인도 동상으로…기념·추모 성격 강해진 2000년대

2000년대부터는 독립운동가 등 위인보다는 민간인 동상을 건립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지역 홍보를 위해 해당 지역 출신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동상을 건립하는 일이 많았다.
2004년 강원도 춘천시에 세워진 배용준·최지우 동상은 당시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에 힘입어 세운 동상이다.
당시 일본 팬들이 이 동상을 보기 위해 춘천시로 관광을 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5년에는 인천광역시 중구가 해당 지역 출신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축구선수 김남일을 동상으로 세우기도 했다.



민주화나 노동운동 등에 투신한 사람들의 동상도 많이 세워지던 시기였다.
2005년 청계천 복원일에 맞춰 서울시에는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일했던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2018년에는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채 발견됐던 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과거 동상이 통치자의 권위를 증명하는 데 쓰이거나 해당 인물의 공적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2000년대 초반부터는 대상을 추모하거나 기념하는 것으로 점차 변모했다.
2008년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이천시 설봉공원에서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활동 중 순직한 소방 공무원들을 기리기 위한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동상은 화재 진압 도중 건물이 무너져 순직한 고(故) 윤재희 소방교 등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대원 10명의 모습을 모두 본떠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2017년 전라남도 진도군에는 세월호 참사 때 구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다 숨진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지도자 동상도 변모…2024년 박정희 동상 연속 제막식

1990년부터 현재까지 공공장소에 지어진 역대 대통령 동상은 이승만·박정희·김대중·박근혜 전 대통령뿐이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본인의 동상을 건립하는 데 힘쓰기도 했으나 정권이 바뀌며 철거되기도 했다.
지도자 동상은 지역별로 뚜렷한 특색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 동상의 경우 서거 1주기인 2010년 대부분 건립됐는데, 전남과 전북에 세워졌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은 경북과 대구광역시에 건립됐다.
지난해 12월 경북 안동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화환을 보내기도 했고, 같은 달 대구 동대구역에도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1990년부터 포털사이트, 지방자치단체 누리집에서 '동상'과 '제막'을 포함한 키워드의 보도자료와 시정 소식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이를 통해 1990년부터 올해 이달 4월까지 개최된 동상 제막식의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흉상이나 부조는 제외했으며, 실존 인물을 본 따 건립된 동상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동상을 제외한 평화의 소녀상, 노동자 동상 등은 분석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등 교육기관에 건립된 동상도 제외하고 공원, 기념관 등 공공장소에 건립된 동상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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