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대비 동계종목 협력회의' 현장.
빙상, 스키·스노보드, 바이애슬론 등 7개 동계 종목 관계자들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현재 210일인 훈련일수를 늘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하지만 훈련일수를 늘리기 위해선 그만큼 정부 예산이 더 필요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훈련일수를 30일 늘리는 데 예산이 30억원 더 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곤 웃으면서 "우리 연맹에 (기업) 회장님들 몇 분 계시니 훈련일수 30일 늘리는 건 회장님들이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나"고 말했다.
현장에선 웃음이 터졌고, 유 장관도 "그냥 농담으로 한 얘기"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웃기지만 슬픈, 이른바 '웃픈' 장면이었다.

대한체육회 산하에는 대한축구협회, 대한양궁협회 등 정회원 64개를 비롯해 모두 83개 회원종목단체가 있다.
하지만 이 중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단체는 드물다.
이 때문에 체육계에서는 선수 출신보다 협회 재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재계 인사가 종목단체 회장으로 선호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여러 논란 속에서도 지난 2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4선에 성공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 회장은 투표를 앞두고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의 성공적 완성을 위해 대한축구협회에 5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예산 확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 종목단체 회장을 맡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취임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과거 대한탁구협회장 재임 시절의 일로 논란에 휩싸였다.
문체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는 지난 14일 대한탁구협회가 후원 및 기부금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당하게 지급한 것과 관련해 전·현직 임직원 징계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징계 대상자 중에는 유 회장도 포함됐다.
유 회장은 재임 시절 인센티브 규정을 새로 만들어 협회 발전기금을 유치한 임직원에게 그 금액의 10%를 인센티브로 지급했다.
이에 대해 윤리센터는 "정관에 명시된 '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유 회장은 해당 규정을 인지하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가 규정을 고의로 위반했는지, 혹은 사적 이익을 취했는지 여부는 향후 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다만 종목단체들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인센티브 지급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현재 규정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리센터는 "비상근 임원이 무보수로 후원을 유치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했지만 이는 종목단체의 실제 운영 여건과 동떨어진 인식처럼 보인다.
반면 협회 재정 확충을 위해 인센티브가 필요했다는 유 회장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유 회장도 관련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부분 단체의 재정이 열악해 회장이 직접 발로 뛰며 후원을 유치해야 하는 현실"이라며 "이제는 관련 규정들을 되돌아보고 손볼 시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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