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1492년 바닷길을 찾아 나선 것은 애초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1519년 5척의 배를 끌고 출발한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도 원래 세계를 일주할 의도는 없었다.
콜럼버스는 향신료의 주요 생산지인 인도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고, 마젤란은 동남아시아의 말루쿠제도로 가서 향신료를 싣고 희망봉을 돌아 귀국하려는 계획이었다.
당시 귀중했던 향신료에 대한 유럽인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향신료를 얻으려는 무한한 욕구가 근대 초 세계 경제를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기 유럽 강국들은 여러 대양을 서로 연결해 거대한 해상 제국을 수립했고, 세계적인 교역을 탄생시켰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인 로저 크롤리는 이 책에서 유럽의 향신료를 얻기 위한 경쟁이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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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크롤리/ 조행복 옮김/ 책과함께/ 2만8000원 |
동서 교역에 대해 ‘실크로드’라는 교역로가 잘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연결된 육로였지만 14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향신료의 가치가 점점 높아갔지만, 실크로드로 옮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인도에서 유럽에 도달할 때쯤이면 가격이 1000%까지 치솟아 때로는 금보다 비쌀 정도였다.
더 빠르고 편리하게 향신료를 얻기 위해 해로가 개척되며 대항해 시대가 열린 셈이다.
유럽인들은 신대륙 발견과 정복 사업에 나서면서 더 정확한 지도 제작과 그에 따른 항해로 세계가 구체(球體)임을 증명했다.
이에 힘입어 새로이 발견한 태평양의 텅 빈 곳을 채워나갔고, 세계적 도시들을 건설했으며, 세계를 서로 연결했다.
아울러 인쇄술의 발달로 전에 없던 정보의 시대를 열었고, 세계적 교역망을 구축했다.
책은 16세기 세계화의 시작과 그에 따른 범세계적 교역 증대, 물자 이동 같은 성취를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가져온 민족·문화·세계관 간 충돌의 파괴적 이면까지 들여다본다.
16세기 ‘대가속(Great Acceleration)’ 이후 몇백 년 사이에 큰바다오리의 서식지는 파괴됐다.
16세기 유럽 탐험대가 향신료를 찾는 과정에서 실수로 들어가거나 표류한 섬들은 19세기 들어 세계 강국들의 소유권 영역으로 분할·점령됐으며 20세기에 태평양은 다시 두 차례나 거대한 싸움터가 되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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