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한민국은 누구의 동상을 얼마나 많이 세웠을까. 아시아경제는 1990년부터 이달까지 포털사이트, 지방자치단체 누리집 등에 담긴 실존 인물의 동상 제막식 개최 기록을 분석했다.
동상 하나를 세우는데 수억 원의 돈이 들어가지만 제대로 된 사회의 합의 없이 추진돼 갈등을 빚거나, 잘못된 고증으로 재건립이나 철거 요구에 맞닥뜨리는 일도 빈번하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온라인 포털 사이트와 지방자치단체 누리집에 수록된 동상 제막식 내용을 분석한 결과 '세금 낭비' 논란을 피할 수 없었던 동상이몽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 동상은 인물의 공과를 두고 건립 계획 단계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경우다.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인물이라는 평가와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당시 발전 과정에서 수혜를 받았던 대구와 경상북도에만 그의 동상이 여러 개 건립된 것도 양분된 국민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북도가 지난해 12월 민간단체가 모금을 통해 8.2m 높이의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찬반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5억원을 들여 만든 백 장군 동상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6·25 전쟁 영웅이라는 평가와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토벌하는데 일조한 친일민족반역자라는 비판을 모두 받고 있다.
백 장군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고, 정부 홈페이지의 안장 기록에도 같은 내용이 표기됐으나 윤석열 정부 보훈처에서 동상 건립에 이어 이 표현을 삭제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상의 인지도가 떨어져 건립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016년 인천광역시 동구에 건립된 어영대장 신정희 동상이 이에 해당한다.
1억7000만원을 들여 만든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이 인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영대장 신정희는 조선 시대 장군으로, 고종의 명을 받고 외세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인천에 화도진을 세웠다고 알려진 인물이나 역사적 고증에 필요한 자료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동구에서는 매년 5월 화도진 축제를 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마케팅 차원의 동상"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지도는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세운 동상이 철거되기도 한다.
2017년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에 세워진 순종 황제 동상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지난해 완전 철거됐다.
대구 중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9년 남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것을 모티브로 그가 다녀간 길을 '순종 황제 어가길'로 조성했고, 어가길이 끝나는 지점에 2억5000만원을 들여 높이 5.5m의 순종 황제 동상을 세웠다.
지자체는 '황제의 길'이라며 역사적 공간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취지였으나, 일부 시민단체와 학계 측에서는 "순종의 남순행은 일제가 조선인의 반일 감정을 없애기 위해 황제를 앞세워 대구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며 이를 길로 조성하고 동상으로 건립하는 것은 사실상 친일 미화라고 반발했다.
이후 어가길은 관광지로의 모객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로교통 불편 등의 민원만 계속됐다.
결국 애물단지로 전락한 동상은 끝내 철거됐다.
모두가 아는 인물이어도 정작 고증이 잘못돼 논란을 빚는 경우도 있다.
2018년 경기도 의정부시 역전근린공원에 건립된 안중근 의사 동상이 그렇다.
아시아경제 집계 결과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세운 동상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이 안 의사 동상이지만, 의정부시의 경우 고증이 잘못돼 시민단체의 반발을 마주해야 했다.
이 동상은 중국 민간단체 차하얼이 만들어 의정부시에 기증한 것이다.
의정부시는 2억원을 들여 동상을 설치했으나, 안 의사의 단지한 약지가 멀쩡하게 재현돼있다거나 유묵의 뜻을 잘못 해석한 채 돌판에 새겨 논란이 됐다.
계속해서 오류를 지적받고 수정하는 작업에만 추가로 5500만원이 쓰이면서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윤봉길 의사 동상도 비슷한 논란에 직면한 바 있다.
1992년 윤 의사 의거 60주년을 맞아 제작된 윤 의사 동상의 경우 졸속 제작을 했다며 유가족 측에서 항의하기도 했다.
당시 윤 의사의 조카 윤용씨가 소장으로 있던 윤봉길의사사상연구소는 "동상이 실물과 너무 달라 경악을 금치 못한다"라고 비판했고, "실물과 전혀 다른 동상을 공개하는 것은 선열에 대한 모욕"이라며 재제작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물 사후가 아닌 현역 활동 중에 건립된 동상들도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경기도 군포시는 2010년 5억원을 들여 군포시 출신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상징하는 동상을 건립했다.
그러나 실제 김 선수와 닮지 않은 모습에 김 선수 측에선 건립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시민단체에서는 '동상이 조악한데 5억이라는 예산이 쓰였을 리 없다'며 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군포시는 결국 조형물에서 김 선수의 이름을 삭제했다.

강원도 태백시에 2019년 건립된 연예인 송혜교·송중기씨의 동상도 대상이 됐다.
당시 태백시는 두 사람이 출연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에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동상을 세워 관광지로 탈바꿈했고, 매년 커플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혼 발표 이후 태백시의 조치에 주목하는 분위기였으나, 태백시는 동상 철거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사람의 이혼 발표로 3회 커플 축제는 취소됐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1990년부터 올해 이달 4월까지 개최된 동상 제막식의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흉상이나 부조는 제외했으며, 실존 인물을 본 따 건립된 동상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동상을 제외한 평화의 소녀상, 노동자 동상 등은 분석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등 교육기관에 건립된 동상도 제외하고 공원, 기념관 등 공공장소에 건립된 동상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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