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에 이어 여당까지 "국민이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은행권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으로선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기조가 여전한 상황인 만큼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은행채 5년물 금리는 2.965%를 기록했다. 고정(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준거금리가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가 3% 밑으로 내려간 것은 올해는 물론 2022년 3월 이래 처음이다.
시중은행 역시 시장금리 하락에 따라 대출금리 조정에 나서고 있으나, 그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전날 기준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고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50~5.90%인 것으로 집계됐다. 앞선 10월 기준금리 인하 당일(3.71~6.15%) 대비 상·하단 모두 약 0.20%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 인하 폭(0.25%)은 물론 은행채 금리 감소 폭(0.33%) 역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자 줄어드는 추세였던 예대금리차는 다시 확대 추세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0.43%포인트 수준이었던 5대 시중은행의 정책서민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는 지난 10월엔 1.03%포인트로 석 달 만에 0.60%포인트 확대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출금리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예대금리차만 확대되면서 금융당국은 물론 여당까지 나서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인하 수준이 체감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8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출금리 인하를 자제해 온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과도하게 큰 예대마진과 그로 인한 국민부담을 고려할 때 대출금리 인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다음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오롯이 가계, 기업, 소상공 자영업자에게 전달돼야 한다"면서 "시중은행이 은행 가계 대출금리를 상향 조정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금융당국을 통해 금리 상황을 체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정작 은행권에선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이어가면서 가산금리 인상, 대출한도 축소 등을 통해 대출수요에 대응해 왔는데, 다시 금리를 내릴 경우 되레 가계부채를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특히나 주요 은행들은 연초 제출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한창 뛰어넘은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액은 경영계획 대비 150.3%를 기록하기도 했다.
새해에도 이런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에서 관리한다는 기존 목표를 유지 중이며, 은행권과 내년도 연간 가계대출 경영계획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월별·분기별 목표치도 따로 설정해 제출토록 했다. 내년에도 가계부채 관리가 계속된단 얘기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금 와서 가산금리를 내린다는 건 가계부채를 늘리겠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면서 "새해에도 대출 규제가 계속될 예정이고, 각 은행 또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각종 대출 자산 증가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전망이어서 당분간 뚜렷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수신금리 인하엔 다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날 기준 5대 은행의 주요 예금상품 기본금리를 보면 최고 연 3.35~3.42%로 이전과 큰 변화는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자산 증가율도 크게 낮아진 만큼 수신금리도 인하해야겠지만, 지난번 금리 인하 때보단 속도가 다소 느릴 것"이라면서 "예대금리차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국면인 만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