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치적 불안이 확산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1.5% 오르며 석 달 연속 1%대 물가상승률을 유지했지만, 지금과 같이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위로 올라가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물가상승률이 다시 2%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상승세였던 환율…비상계엄으로 엎친 데 덮친 격 될까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적 리스크 부각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입물가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수입물가(원화기준)는 원·달러 환율과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전월대비 2.2% 상승했다. 환율효과를 제외한 계약통화기준 수입 물가는 전월대비 0.7% 상승했는데, 나머지 1.5%의 상승 폭은 원화가치 하락으로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상계엄 이전부터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 상승이 예고된 데다 정치적 리스크 확산으로 환율이 더 급등한 만큼 향후 물가 흐름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올해 11월 커피원두의 수입가격(잠정치)은 kg당 3만2502원을 기록했다. 올해 초 수입가격인 2만3813원 보다 36.5% 상승했다. 원두 작황 문제로 가격이 상승한 영향도 있지만, 이 기간 환율도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1월 원·달러 환율(월평균 매매기준율)은 1323.57원에서 11월 1393.28로 5% 이상 상승했다.
다른 농축산물 역시 연초보다 가격이 올랐다. 소고기의 kg당 수입가격은 올해 초 1만5768원에서 1만2752원으로 23.6% 올랐다. 밀가루는 1월 1370원에서 지난달 1497원으로 9.3% 올랐고, 식용유(대두유)도 1749원에서 1872원으로 7.1% 올랐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달 3일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저효과와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당분간 2%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는 현재 수준에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환율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파급 시차를 고려할 때 12월 이후부터 반영될 것"이라며 "향후 물가 전망 경로는 환율·유가 추이, 내수 흐름, 공공요금 조정 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연말·연초 기업 가격 조정의 물가 파급효과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환율의 급격한 변화는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원자재 가격 변동에 민감한 산업이나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환율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면세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고환율 영향으로 내국인의 면세품 수요가 줄었는데, 비상계엄 사태로 환율이 더 급등했고, 불안심리가 커지면 여행·소비가 감소할 수 있어 추가 피해가 불가피하다. 달러 결제가 필요한 해외여행, 해외직구, 해외등록금·영어자격증시험 등의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시장안정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의 불안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심리가 강해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지난 3일 원달러 환율은 1402.9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같은날 비상계엄 선포 직후 환율이 급등하더니 저녁 11시50분 1446.5원까지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이 1446.5원까지 오른 건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15일(1488.0원) 이후 15년8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비상계엄 충격으로 휘청였던 환율은 4일 새벽 1시쯤 안정세를 찾았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고, 정부도 비상계엄으로 인한 시장 불안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 등 금융·외환 시장안정 수단을 총동원해 시장안정 조치에 나선다고 밝히면서다. 이후 새벽 2시 환율은 1425원으로 하락했고 1410.1원에 마감됐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 돌입하면서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있어 당분간 환율 변동성 확대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차 계엄 선포 가능성까지 언급되면서 환율은 다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6일 11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29원을 돌파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