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이 하루아침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됐다. "
한 금융지주 관계자의 뼈아픈 농담이다.
비상계엄이 내려진 지난 3일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금융주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올해 들어 금융주는 밸류업 기대감에 최고 70%에 달하는 상승률을 보였다. 구체적인 목표와 명확한 달성 방법, '밸류업에 진심'이라는 경영진의 진정성까지 더해진 결과다. 하지만 계엄 이후 불과 4거래일 만에 금융주는 올해 상승분 중 3분의 1가량을 반납해야만 했다. KB금융은 비상계엄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4거래일 동안(종가 기준) 주가가 18.18%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하나금융(-13.33%), 우리금융지주(-10.98%), 신한지주(-5.93%)도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주가를 끌어내렸다. 계엄 이후 4 거래일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도한 금융주는 1조원이 넘는다.
밸류업에 힘썼던 금융사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그동안 금융당국 및 금융지주 수장들은 홍콩, 동남아 등을 돌며 꾸준히 투자자들에게 밸류업 세일즈에 노력해 왔으나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결국 아무리 기업의 펀더멘털이 튼튼해도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평가절하가 된다"고 푸념했다.
밸류업에 만전을 기울이던 금융사들은 이젠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막는 데 총력전이다.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는가 하면 수시로 컨퍼런스콜을 진행하며 대외신인도 유지 노력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번 떠난 투자심리를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그동안 우리는 'K'로 대변되는 국격의 위상을 체감해왔다. K-뷰티, K-pop에 이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탄생하며 K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만큼은 K 매직이 통하지 않았다. 밸류업으로 인한 K-금융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계엄'이라는 찬물에 꽁꽁 얼어붙었다.
누군가에게 국적이 '프리패스 여권' 혹은 '명함'이라면, 금융사들을 비롯한 우리 기업들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는 평생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다.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계엄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평생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문신처럼 남았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