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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은행, 기계적 독립성에서 벗어나라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5-01-14 10:43:33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며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
한국은행법 제3조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관한 조항이다.
중앙은행에 있어 독립성은 금과옥조와 같다.
그 탓인지 정부 정책에 관해 적극적으로 비판에 나서지 않고 절간처럼 조용히 침묵을 유지한다는 의미의 '한은사(寺)'라는 별명이 한은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변화가 생긴 건 2022년 4월, 이창용 총재가 취임한 뒤부터다.
이 총재는 특유의 거침 없는 화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공식 석상에서 준비된 답변 외의 돌발 발언도 내놓으며 한은 직원들을 식은땀 흘리게 했다.
그는 취임 후 꾸준히 '한은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한국 경제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시끄러운 한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일, 이 총재는 신년사를 읽던 중 최상목 권한대행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두고 "여러 간부가 말을 하지 말랬는데 읽다 보니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며 "최 대행을 비판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답도 같이하시는 것이 좋겠다"며 최 대행을 공개적으로 두둔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와 정치가 독립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던 총재가 공식 석상에서 정치적 발언을 해도 되겠느냐'라는 비판과 함께 '총재가 정치를 하려는 욕심이 있는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중앙은행 총재의 정치적 발언이 적절한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올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은 건 분명하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많은 전문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과 기준금리 인하를 동시에 진행하는 정책 공조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원활한 경제 정책 운용을 위해 통화정책의 수장이 재정정책의 수장을 두둔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오히려 지금은 여러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는 중앙은행의 기계적인 독립성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재정 당국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경제를 살려야 한다.
일본은행(BOJ)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당시, 경기 부양책을 내놓던 정부와 반대로 금융 긴축 정책을 단행해 장기 침체를 이끈 주요 책임자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또한 일본과 같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은법 제4조에는 '정부 정책과의 조화'에 관한 조항이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은은 독립성의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며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때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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