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앞서 2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정도로 경기둔화 우려가 커졌지만 이달 금리를 유지했다. 추가 금리 인하가 이미 많이 오른 원·달러 환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부진한 국내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은이 다음 달에는 다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통방)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3.00%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6인의 금통위원 중 5인이 동결 의견을 제시했고, 신성환 위원은 0.25%포인트 인하 소수의견을 냈다. 3개월 이후 금리 전망(포워드가이던스)에 대해서는 금통위원 6인 전원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라는 의견이었다.
한은 금통위는 작년 11월28일에 열렸던 직전 통방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바 있다. 앞서 10월 인하까지 고려하면 2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내렸다가 이번에 동결로 돌아섰다.
계엄 사태로 급등한 환율을 금리 인하가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불안이 금통위원들의 공감대를 얻은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2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만큼 일단 동결하고 국내 경제 상황을 점검하면서 다음 금통위에서 추가 인하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분만 금리 인하 소수 의견을 냈다고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5대 1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것보다 다양한 의견이 많았다"며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지만 이자율은 경제에만 영향을 주지 않고 여러 변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영향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변화가 환율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데, 현재 환율 수준은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털이나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로 설명 가능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두 차례 금리 인하 효과를 보고 숨 고르기를 하면서 정세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신중하고 바람직할 것이라 판단했다"고 금리 동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환율이 높은 수준까지 오른 이유에 대해서는 "계엄 전 1400원에서 1470원대로 올랐는데 이 중 50원 정도는 전 세계 공통으로 달러 강세가 이어졌기 때문이고 20원 정도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며 "다만 국민연금의 달러 헤지 물량, 외환 당국의 시장 안정화 효과로 인한 하락 효과로 계엄에 따른 환율 상승분은 30원 정도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율이 1470원대로 올라간다면 기존에 예측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 1.9%보다 0.15%포인트 정도 올라가 2.05%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통위원 전원이 3개월 이후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이유에 대해서는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므로 단기적인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경제 여건 변화를 확인한 이후에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은, 다음 달 금리 인하 나설 듯…이창용 "가급적 빨리 추경 편성해야" 한은은 부진한 국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다음 달에는 기준금리 인하에 다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들이 전망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인 2.0%를 크게 밑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는 1.7%에 불과하다. 한은의 전망치도 1.9%인데 다음 달 경제전망에서 수치를 더 내릴 가능성도 있다. 전망기관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이 수출둔화와 내수 부진으로 저성장이 굳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4분기는 계엄 사태의 영향을 받아 소비와 내수 지표 등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졌다"며 "최근 한은 내부에서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0.2%나 더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가급적 빠르게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 변수는 예전과 달리 환율 등 다른 변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통화 정책만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떨어진 만큼 보완하는 정도로 필요할 것"이라며 15조~20조원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추경은) 일시적으로 경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차별적 지원보다는 자영업자 등을 타깃해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총재는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정치가 아닌 경제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경제를 안정화하려면 금리를 얼마 낮출 것인지보다 이것이 더욱 근간이라고 봤기 때문에 경제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며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안 할 수 없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전날 계엄 사태로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이 집행된 데 대해서는 "어제 사태를 계기로 다시 우리 경제 프로세스가 정상화돼서 과거와 같은 순서에 따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총재는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우리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함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문제는 합의를 보기 어렵더라도 경제 문제만큼은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여·야·정 협의가 빨리 진행되도록 하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며 "정치와 경제를 투 트랙으로 나눠 경제 정책이 빨리 진행되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