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 앞에 섰다. 취임일인 20일(현지시간)부터 중국과 캐나다·멕시코를 타깃으로 한 고율 관세, 기타 모든 나라에 10~20%의 보편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한국의 수출 전선에도 큰 파고가 예상된다. 보편 관세의 경우 미국이 각국별로 협상을 통해 최대의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자틀이 아닌 양자틀의 협상에서 약국(弱國)이 협상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수출 피크아웃(하락전환) 속 내수 부진의 골이 깊어지는 구조적 위기 상황에서 트럼프발 관세 전쟁까지 본격화되면서 1%대 저성장이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cdn2.ppomppu.co.kr/zboard/data3/hub_news2/2025/0120/newhub_2025011714493593392_1737092976.jpg) 올 7월부터 상대국에 일괄 관세...정부 범부처 대응책 마련 "우리의 관세를 비롯해 해외를 원천으로 한 모든 수입을 징수할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만들겠다. 무역에서 돈을 버는 이들에게 과세를 시작할 것이다. " 지난 14일 트럼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취임일에 대외수입청을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등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을 전담할 별도의 기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관세 인상을 통해 연방 세수를 확보하고 소득세·법인세 감면 등 세수 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그간의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트럼프 경제정책의 두 축인 감세와 관세 인상 공약이 단순 엄포가 아닌 조만간 닥칠 현실이 된 것이다.
20일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트럼프가 공언해온 보편 관세를 한국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관건은 (관세 인상) 시점인데 늦어도 올해 하반기부터는 미국의 보편 관세 부과가 시행된다고 보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보편 관세는 모든 국가의 모든 품목에 차별 없이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개별 협상을 통해 자기들이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을 얻어내면서도 국가별로, 품목별로 예외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관세를 무기로 최대 압박 이후 미국에 유리한 협상으로 마무리하는 패턴을 반복할 것이란 관측이다. 보편 관세 부과를 협상 전술로 사용하며 무역적자 해소, 수출 보조금 철폐, 방위비 분담 등과 같이 상대국에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정부는 유효한 정책 수단과 협상 전략 마련에 나섰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지난 6일 첫 '대외경제현안 간담회'를 열고 트럼프 2기 출범과 관련한 범부처 대응 논의를 본격화했다. 부처 중심의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경제 6단체와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회의체로 확대 개편해 매주 회의를 열고,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1급 회의체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통상 질서의 틀을 벗어난 예측불허의 트럼프식 협상술에서 상대적 약국인 한국이 실리를 모두 챙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출 피크아웃 맞물려 경기 악화 경로에 빠질 수도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한국 수출 둔화와 맞물려 큰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수출액은 6940억달러로 전년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증가율(8.2%)에 대비 크게 둔화한 수치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은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경제 성장률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이미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악화에 따른 수출 피크아웃과 내수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로 1%대 구조적 저성장기에 진입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전쟁이 몰고 올 세계 교역 위축이 한국 수출 감소, 기업 실적 악화, 투자 감소, 고용 감소, 실질소득 감소, 소비 위축 등으로 이어지며 통상적인 경기 악화 경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준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고 가계는 소비를 줄이는 등 경제 주체들의 심리 위축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며 "수출 둔화가 실물경제 악화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보인다"고 짚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트럼프가 공약한 20%의 보편 관세 부과가 이행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 감소액은 약 304억달러(약 44조2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9~0.67%포인트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경제 성장률 1.8%마저도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제연구소 센터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제 관세정책 강도가 공약 수준에 부합하고 실행 시기가 빠르거나 국내 정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1.8%를 하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거시경제 환경이 트럼프 집권 1기 때보다 악화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다. 재정적자 비율이 커지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상황에서 감세 정책으로 재정적자는 더욱 늘어나고 고율 관세를 매기면서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모든 국가에 10%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석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관세전쟁으로 인한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은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슈퍼 관세 영향으로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지 못한 상품 중 일부를 국내에 덤핑으로 쏟아낼 경우 물가 하방 압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