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바꾸자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의결되면서 재계 및 투자은행(IB) 업계가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할 경우 국내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인데요.
4일 M&A알쓸신잡에선 상법 조항의 문구를 일부 바꾸는 작업이 낳을 파급력과 그 당위성 등을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이번에 법사위를 통과한 개정안의 핵심은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입니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대해 '회사'를 '회사 및 주주'로 변경했습니다.
또한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항을 신설했죠.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해 상법이 개정되면 그동안 '회사'에만 책임을 지던 이사회가 이제 '주주 이익'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은 해외투자자들이 한국 자본시장에 지적해 온 기업 지배구조 평가지표 개선에 기여할 영역"이라고 짚었습니다.
반면 재계는 소수 주주나 행동주의 펀드에 의한 과도한 경영권 침해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이사들이 주주들의 과도한 배당 요구에 휩쓸릴 경우, 기업의 장기 투자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죠. 익명을 요구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주와 이사 간 충실의무 관련 법 위반을 규정하기 어렵다.
주주 구성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라며 "개정안 통과 시 기존 체계를 크게 뒤흔드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해외 상황은 어떨까요? 이번 개정안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델라웨어주 회사법 관련 조항은 이사의 의무 대상에 "주주의 금전적 이익(the pecuniary interests of the stockholders)"을 명시적으로 포함하죠. 하지만 영국과 일본, 독일 등 다른 주요국은 여전히 '회사'만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으로 명시합니다.
델라웨어 회사법도 주주 이익만이 아닌 주주, 관련인, 공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주주 일방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특히 배당성향이 낮고 순현금이 풍부한 기업들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한 일본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죠. 특히 사외이사 비중 확대와 이사회의 책임 강화를 핵심으로 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 주식시장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최근 30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간 행동주의 펀드 등은 한국 기업들의 배당 성향이 지나치게 낮아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해 왔죠. 실제로 미국과 일본, 대만 등이 50% 내외의 기업 배당 성향을 보였지만 한국은 중국보다 낮은 30% 미만의 배당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일본은 기업 지배구조 지표 개선 및 주주 행동주의 확산을 경험했고, 이후 외국인 유입 확대, 지수 상승 등에 성공했다"며 "한국의 상법 개정은 국내 주주행동주의 확산에 기여할 전망이며, 특히 한국 기업의 낮은 배당성향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주주 행동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LS증권 분석에 따르면 현대모비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현대건설, 농심 등은 배당성향이 13~2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고 순현금이 풍부한 곳들이기도 하죠. 통상 PBR이 1배보다 낮으면 주가는 저평가된 것으로 해석합니다.
다만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상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실제 거부권 행사로 재의결이 이뤄지게 되면 200표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의 이탈표가 나와야 하죠.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달 27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며 상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았고, 여야의 협의를 우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 여부와 별개로 '한국 지배구조 개선'이란 큰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근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의 재무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도 발표됐습니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2021~2023년 한국ESG기준원 선정 지배구조 우수기업과 취약 기업의 재무 실적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지배구조 우수기업(S~B+ 등급)이 취약기업(B 이하 등급)보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총자산이익률(ROA) 등 재무지표에서 일관되게 우수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지배구조 우수기업의 평균 시가총액도 취약 기업 대비 높게 나타났죠.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국내 주식시장을 관통할 중요 키워드 중 하나는 '거버넌스 개혁'일 것"이라며 "개인주주뿐만이 아니라 주요 국가기관도 개선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향후 기업들의 주주환원 움직임이 확대된다는 큰 방향성이 유지될 것이다.
실제 상법 개정 여부와 무관하게 여당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거버넌스 문제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는 판단"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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