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4대 금융지주와 4대 은행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회의에 수백건의 안건이 올라왔지만 단 1건의 반대 없이 모든 안건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와 부당 대출 등 은행권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사외이사들의 경영진 견제와 감시 역할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가 공개한 '2024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사외이사 이사회가 작년에 공식 회의를 열고 결의한 안건은 총 161회였다.
하나금융지주가 46건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금융지주가 42건, 신한지주가 39건, KB금융지주가 34건이었다.
전체 안건 161회 중에서 부결된 안건은 단 1건도 없었고 가결률은 100%였다.
작년 한 해 동안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7명 중에 안건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이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은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대 은행 사외이사 이사회에서 지난해 결의한 안건은 총 382건인데 가결률은 사실상 100%였다.
지난해 3월26일 KB국민은행에서 열린 7차 임시이사회에서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손실고객 대상 보상 자율조정안과 관련해 이사 1명의 유일한 보류 의견이 나왔지만 사흘 뒤인 3월29일에 열린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이 다시 상정되고 바로 가결됐다.

금융권 사외이사들의 이른바 '거수기'(본인 주장 없이 위에서 시키는대로 손을 드는 사람)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닌 매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이는 사외이사들이 금융지주 회장 같은 내부 고위직의 추천을 받아 임명되다 보니 사내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기 힘든 구조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금융 관계부처 고위공직자 출신이거나 친정권 정치활동 경험, 학연 등으로 엮여 있어 회사나 정부로부터 독립성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달 경제개혁리포트를 내고 작년 10월 말 기준 국내 108개 금융회사에서 재직 중인 사외이사 456명 중 23.7%인 108명이 회사와 정부 등으로부터 독립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검증이 필요한 사외이사는 계열사 사외이사 경력 34명, 고위공직 및 금융연구원 출신 31명, 친정권 정치활동 경력 20명, 이해관계 59명 등이었다.
4대 금융 뿐 아니라 NH농협금융과 기업은행, 산업은행, BNK금융지주 등 주요 은행들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승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외이사 구성을 보면 여전히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에 우호적일 수 있는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금융회사들이 회사와 전체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는 독립적 사외이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는 동안 회사 내부통제 기능 약화는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NH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은행들의 고질적인 이사회 무시(패싱) 문제를 지적했다.
KB국민은행은 2023년 자회사인 인도네시아 부코핀 은행에 2000억원을 투입해 추가 유동성을 공급했는데 이사회나 리스크관리위원회 등의 평가를 사실상 건너 뛰었다.
이미 모든 것을 결정내린 뒤에야 이사회에 형식적인 보고를 했다는 금감원의 지적을 받았다.
우리금융의 경우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추진하면서 이를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해 이사회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 투자자들에게 수천억원의 피해를 입히며 사회적인 문제가 됐던 홍콩 ELS 사태나 지속적인 내부 횡령, 부당 대출 문제 역시 이사회의 감시기능이 제한적인 탓에 발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주회장 중심의 낙후된 은행권의 지배구조가 대규모 금융사고를 유발하고 있다며 철저한 조직문화 쇄신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이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4대 금융지주는 대부분의 이사들을 올해도 유임할 예정이다.
4대 금융지주는 이달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23명 중 9명만 교체하기로 했다.
아직 임기가 남은 사외이사진까지 포함해 전체를 놓고 보면 28%만 교체된다.
부당대출과 횡령 등 여러 문제를 겪은 우리금융이 그나마 사외이사 7명 중 4명을 교체하며 가장 큰 쇄신에 나섰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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