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상황 속 한국 경제의 분야별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과 지방 간 부동산 시장 격차와 자영업자 내 간극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더딘 경제 성장 여건에서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부동산시장 상황을 중심으로 한 부실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가격 상승의 서울 전역 확산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 여부를 눈여겨보는 한편, 지방 부동산 침체 관리 역시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부동산 부진은 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과 건설사뿐 아니라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고위험가구' 부실을 더욱 부추길 수 있어서다.

27일 한은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신용은 1927조3000억원으로 주택관련대출(11조7000억원)을 중심으로 전 분기 대비 0.7% 증가했다.
취약차주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6.6%에서 4분기 말 6.9%로 늘었고, 잠재 취약차주 비중 역시 17.5%에서 17.6%로 증가했다.
취약차주는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차주, 잠재 취약차주는 취약차주의 특성에 근접한 차주를 의미한다.
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말 0.36%에서 4분기 말 0.38%로 오름세를 이어갔다.
비은행은 연말 부실채권 정리 영향 등이 작용해 2.17%에서 2.07%로 줄었다.
한은은 취약부문 부실에 따른 금융기관 건전성 저하 역시 우려했다.
최근 일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다시 빠르게 상승하고 여타 지역으로 확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안정세를 보였던 가계부채 증가 폭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시장에서는 최근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지정 이후 부동산 거래량이 주춤하고 안정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하지만 아직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엔 시기상조"라며 "가계부채 비율이 주요국과 비교해 여전히 높은 수준인데다 최근 서울 등 일부 선호 지역의 빠른 주택가격 상승 움직임이 여타 지역으로 확산할 경우 주택 관련 대출 증가 폭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 주택매매가격의 하락세가 지속되며 양극화가 확대되는 부분에 대해 우려했다.
지방을 중심으로 가계 자산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가격이 하락해 지방 고위험가구의 채무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고위험가구는 38만6000가구로 집계됐다.
고위험가구는 총부채상환비율(DSR) 40% 초과, 자산대비부채비율(DTA) 100% 초과 가구로, 가계 자산과 부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한다.
지난해 고위험가구는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3.2%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72조3000억원으로 전체 가구의 4.9%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고위험가구 수와 금융부채 비중은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크게 높아졌던 2023년(3.5%·6.2%)에 비해 하락했으나 2022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구 수 기준으로는 2017~2024년 장기평균(3.1%)을 웃돌고 있다.
DSR, DTA 중 한 가지 지표에서만 상환능력이 부족한 가구 비중은 26.5%(318만가구)로 전체 금융부채의 34.8%(512조원)를 보유하고 있다.
한은은 우리나라 고위험가구의 DSR이 75.0%(중위값 기준), DTA는 150.2%로, 소득과 자산 측면에서 채무상환 여력이 크게 저하된 것으로 평가했다.
지방 고위험가구의 중위값 기준 DSR과 DTA는 각각 70.9%, 149.7%로 수도권 고위험가구(78.3%, 151.8%)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지방의 고위험가구는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주 비중(18.5%)이 수도권(5.1%)보다 높아 소득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판단했다.
주택가격 하락은 고위험가구 증가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한은이 금리와 주택가격 변동분과 주택가격 전망을 반영해 지방과 수도권의 고위험가구 비중(금융부채 기준)을 시산한 결과, 지난해 말 지방 및 수도권은 각각 5.4%, 4.3%로 나타났다.
올해 말에는 지방(5.6%)과 수도권(4.0%)의 고위험가구 비중 차이가 1.6%포인트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부총재보는 "수도권과 지방 집값이 너무 차별화됐다.
현재 지방 부동산 시장이 안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지방 건설사도 어렵다"며 "지방은 특히 고령층 고위험가구 비중이 커서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 고위험가구를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관련 동향과 정부 대응 방안의 효과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 부동산 시장 부진은 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 비은행 금융기관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비율 역시 높이고 있다.
지방 부동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수도권 대비 지방 부실률이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6.8%로 집계됐다.
2022년말 2.2%, 2023년 4.4%에서 1년 사이 2.4%포인트가 늘었다.
지난해 분기별로 보면 3분기 7.1%까지 올랐으나, 4분기 0.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은행의 문제여신 보유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다.
지난해 비율 상승의 상당 부분은 PF성 대출(PF대출 및 토지담보대출)의 자산건전성이 저하된 영향으로 추정됐다.
PF성 대출을 제외하면 고정이하여신비율은 5.6%로 낮아진다.
한은은 상승률 2.4%포인트 중 1.0%포인트가 PF성 대출 부실에 따른 것으로 봤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에 비해 지방 소재 기관들의 자산건전성이 더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말 10.2%로 수도권이 9.8%, 지방이 12.2%로 집계됐다.
1년 사이 증가율도 수도권은 2.6%포인트 상승한 데 비해 지방에서는 4.7%포인트나 높아졌다.
상호금융조합(농·수·산·신협)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말 5.1%로 서울이 4.5%, 지방이 5.5%였다.
증가율은 같은 기간 수도권에서 1.5%포인트 오른 데 비해 지방에서는 1.9%포인트 상승했다.
개별 기관으로 살펴봐도 수도권보다 지방 소재 저축은행·상호금융조합의 자산건전성이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비율이 16%를 상회하는 저축은행 비중은 지방이 27%로, 수도권(7.1%)에 비해 높았다.
개별 상호금융조합의 경우 고정이하여신비율이 6%를 하회해 상대적으로 자산건전성이 양호한 조합의 비중이 수도권 72.5%에서 압도적이었다.
지방 부동산시장 부진 영향이 컸다.
지난해 주택매매가격은 수도권이 1.3% 상승한 반면, 미분양 누증이 큰 지방은 5대 광역시(-2.0%)와 8개 도시(-0.2%) 모두 하락하며 2022년 이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부총재보는 "수도권과 지방 간 부동산시장 상황이 차별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방 소재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을 중심으로 자산건전성이 저하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며 "특히 특정 업권 또는 지역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업권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산건전성 개선과 함께 유동성 확충 노력 등 리스크 대응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뿐 아니라 자영업자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기 부진으로 자영업자 소득 회복이 지연되면서 대출 연체율이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다중채무자 중 저소득이거나 저신용인 차주인 ‘취약 자영업자 차주’는 지난해 말 기준 42만7000명으로 전년 말(39만6000명) 대비 3만1000명 늘었다.
전체 자영업자의 13.7%에 달하는 숫자다.
다중채무 자영업자는 전년 말 대비 2만2000명 줄었음에도 저소득·저신용 차주가 각각 2만1000명, 4만7000명 증가한 결과다.
취약 자영업자 대출도 2023년 말 115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25조4000억원(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11.8%)으로 9조6000억원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역시 코로나19 이전 장기평균 수준(2012~2019년 평균 1.68%)에 근접하며 경고등을 켰다.
자영업자 연체 차주는 2022년 하반기 이후 꾸준히 증가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도 1.67%까지 상승했다.
연말 금융기관 연체채권 정리 규모 증가 영향으로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전 분기 대비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비은행(3.43%)과 취약 자영업자(11.16%)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상승한 배경에는 높은 대출금리, 서비스업 경기 부진에 따른 소득 감소 등으로 인해 자영업자의 채무상환 능력이 저하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2022년 말 4131만원으로 감소한 후 지난해 말 4157만원으로 소폭 증가했으나, 높은 자영업자 비중 등 구조적 요인에 서비스업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2019년 말 4242만원)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연체 자영업자는 평균 소득이 2020년 말 3983만원에서 지난해 말 3736만원으로 줄고, 평균 대출은 지난해 말 2억2900만원으로 2020년 말(2억500만원) 대비 증가하는 등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이 부총재보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정책은 개별 자영업자의 상환능력과 의지에 따라 금융지원, 채무조정, 재기 지원 등의 방안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며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 중인 차주에 대해서는 영업 및 금융 비용 등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연체 및 폐업 차주에게는 새출발기금을 통한 채무조정을, 재기 희망 자영업자에게는 취업 및 재창업 지원 등의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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