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결국 거부권 행사하나…금감원 홀로 금융위·당정에 대립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3-29 12:00:00

1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로 기관·단체별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으나 금융감독원은 거부권을 행사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의견서를 보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현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금감원은 의견서에 “상법 개정안이 장기간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된 현재로서는 재의요구를 통해 그간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등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상법 개정안이 논란인 쟁점은 △이사 충실 의무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세 가지로, 개정안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이를 통해 주주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금감원도 만약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시 주주 보호를 위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 재논의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렵다고 봤다.
이번 개정안도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으나 거부권이 행사되면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자본시장법상 원칙규정 도입도 국회에서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교착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금감원은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현재대로 상법 개정안을 공포하고 부작용을 완화하도록 보완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상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 경영자들의 혁신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주주 충실의무의 구체적 내용이 법원 판결례를 통해 형성되기 전까지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법원 판결이 바람직하게 형성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동안 상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어도 자본시장 선진화 및 시장 신뢰를 위해 개정은 필요하다는 발언을 거듭해왔다.
이 원장은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형태의 의사결정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여러 경제단체 및 기업 관계자는 개정안 통과 뒤로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가 되면 주주가 이사들에게 손해배상·배임 등으로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다양한 주주의 이익을 합치시키는 것이 어려워 신속한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금감원이 의견서를 제출하기 전날인 27일 경제 6단체(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만나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정부기관끼리도 입장 차가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8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 대안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우선하거나 (상법 개정이) 자본시장법과 함께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말해왔다”며 상법 개정보다 대안으로 정부가 마련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법 개정안은 정부에 이송된 다음 날부터 15일 안에 정부가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처리 시한은 다음 달 5일까지다.

금융위와 금감원 의견이 충돌하고 여당은 물론 정부 의견이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쪽으로 모이면서 관가에서는 다음 달 1일 국무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 행사를 의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