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상호관세 부과를 전격 발표하면서 한국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 정부는 차관보에서 장관까지 고위급 인사를 네 차례나 워싱턴에 보내 협상에 나서고도, 결국 ‘빈손 외교’로 끝났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3일 업계는 한국이 일본보다 1%포인트 높은 25%의 관세율을 부과받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얼마나 밀렸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예상보다 높은 상호관세가 부과되면서 업계 전반이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상호관세 발효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자동차 업계의 타격이 우려된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347억 달러 규모로 전체 수출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업계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관세 부담으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고관세가 차량 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수출 모델 조정이나 현지 생산 확대 등 중장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최근 한국 정부에 수익성 확보도 불확실한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에너지 동맹’ 차원의 협력이라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산 에너지를 한국이 구매해 수입하라는 구조다.
대만 등 일부 국가는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이미 지분 참여를 결정한 상태다.
한국도 ‘동맹 관리’와 ‘무역 갈등 완화’를 명분으로 사실상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 에너지 업계에서는 "사업성도 검증되지 않은 대형 투자를 국가가 세금으로 떠안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종합해보면 정부는 산업부 장관 두차례, 통상교섭본부장 한차례, 통상차관보 한차례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고위급 인사를 미국에 보내 협상을 시도하고도, 결국 ‘관세 폭탄’과 알래스카 사업이라는 숙제만 안고 돌아온 셈이다.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가 발표된 당일조차도 이렇다 할 대응 방안을 발표하지 못한 채 대책회의만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세 부과 가능성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예고돼 있었고 업계는 여러 차례 사전 대응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응책 없이 '회의'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부 품목과 대응 방안을 긴급히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관세가 발효된 상황에서 사후 대응만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미국 내 의회와 기업, 로펌 등과의 전략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실질적 통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가 통상 협상에서 연거푸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사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현대차는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과 배터리 셀 합작 공장에 총 31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한진그룹은 GE와의 항공기 엔진 정비 계약을 통해 미국 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도 잇달아 현지 배터리 공장 설립에 나서며 미국 내 보호무역 장벽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외교 공백을 기업의 자본이 대신 메우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관세도 막지 못하고, 미국이 원하는 에너지 사업도 수용하면서 기업에게 부담만 떠넘기고 있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한 관계자는 "이제는 ‘외교도 우리가 해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라며 "트럼프 2기 체제에서 지금 같은 미온적인 대응으론 절대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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