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헌법재판소 3차 변론에 출석해 부정선거 의혹을 다시 한번 제기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선관위 연수원에 투입된 군·경은 500명을 넘었다. 윤 대통령은 12월 12일 담화와 체포 후 15일 공개된 편지에서도 부정선거 증거가 많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2002년 16대 대선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당시 '이회창 대세론'으로 불리며 승리를 예상했던 한나라당은 57만 980표 차이로 패배하자 전자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8천여 명이 동원되어 전국 80개 개표구의 1,100만여표를 수작업으로 다시 개표했으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당시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보수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방송인 김어준이 이른바 'K값 의혹'을 제기하며 투표지 분류기 미분류표가 박근혜 후보 쪽에 편중되었다고 주장하며 음모론의 불을 지폈다. 김씨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더 플랜'까지 제작했다. 2017년에는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18대 대선은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였다. 전산 개표 부정 의심을 정당화할 근거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투표소 수개표를 요구했다.
2020년 4.15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계열이 180석을 얻어 압승을 거두자, 미래통합당은 사전투표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황교안 대표는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득표율 차이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으며, 이와 관련해 216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 13일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국회에 나와 "4.15 부정 선거 주장과 관련해 216건의 소송이 제기됐지만 모두 각하됐다"고 답변했다. ![](//cdn2.ppomppu.co.kr/zboard/data3/hub_news2/2025/0122/newhub_2025011514010790276_1736917267.jpg)
부정선거 주장은 크게 네 가지다. 사전투표 조작론, 전자 개표 조작론, 전산시스템 해킹론, 선거 행정 문제 제기가 그것이다. 선관위는 이러한 주장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부정선거를 위해서는 선관위 직원들의 대규모 조직적 가담과 참관인 매수가 필요한 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유튜브를 중심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하면서 강력한 지지층이 형성되었다. 2021년 민경욱 전 의원의 투개표 조작 의혹 소송은 대표적 사례다. 대법원은 사전투표지 4만 5천매의 QR코드를 검증한 결과, 민 전 의원이 주장한 선관위가 부여하지 않은 일련번호나 중복은 없었다고 판결했다.
최근 MBC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 성인의 29%, 보수층의 51%가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더 단순한 의혹 제기 수준을 넘어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현상으로 발전했음을 시사한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의 확산은 최근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와 같은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사회 전반의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박수민 기자 soo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