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회 진출과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임신·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전국 난임 환자 수가 25만명을 넘어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난임 시술비 지원을 비롯한 각종 난임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저출산 시대, 난임 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주제로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었다. 난임 환자가 증가하는 현시점에 올바른 정책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좌담회에는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 정소진 서울시 건강관리과장,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전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난임 지원 정책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 엇갈린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제한 없는 난임 시술 지원은 '임신을 늦춰도 된다'는 잘못된 정책 메시지를 제공하고, 여성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입 모아 우려했다. 좌담회는 참석자 명단을 공개하되 각 토론자의 발언은 익명 처리하는 채텀하우스 룰을 따랐다.
▶ 사회 = 백강녕 디지털콘텐츠 매니징에디터 저출산 문제 해결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난임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금의 난임 정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A : 난임은 생리적으로 생기는 질병이 아니다. 사회적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난임 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착각은 건강보험으로 난임 지원을 하면서 보조생식술로 태어난 아이가 많이 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보조생식술로 태어난 아이는 10% 수준이다. 전체 출생아 수가 적어지니까 비율이 높아진 것이지, 절대적인 수치가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보조생식술을 무한정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정책이 전개됐는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B : 2006년부터 시행한 난임 정책으로 난임 시술만 늘었다. 난임 시술로 태어나는 아이가 늘어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 출생아가 늘어야 하지 않나. 정책 방향이 '난임이면 힘듭니다, 난임 판정을 받기 전에 임신하세요. 난임 예방을 국가가 100% 전적으로 지원합니다'에 맞춰져야 한다. 지금 정책 기조는 '난임이 돼도 정부가 계속 지원해줄 테니 폐경될 때까지 계속하시라'는 메시지를 준다. 여성, 남성 모두 난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C : 정부가 발표하는 난임 정책 내용을 보면 양적인 성과만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을 때 보조생식술을 통해서 태어나는 아이가 많아지면 당장 난임 정책 성과가 커 보일 수는 있다. 앞으로 지금의 난임 정책을 두고 연령, 소득 기준을 다 폐지하고 계속 확대한 이후에도 성과가 없다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D : 저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난임 지원이 저출산 대책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저출산이 발생한 원인을 한꺼번에 바꾸기 어렵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자녀를 갖고자 하는 부부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원이 과도해서 여성 건강에 해가 되고 정책적으로 '아이를 나중에 가져도 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문제도 분명 있으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면서 임신을 원하는 부부를 지원하면 되는 일이다.
난임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나? B : 지금의 난임 정책은 전문가의 의견보다 민원에 따라 춤을 춘다. 여성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국가적으로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 과거 난임 시술은 비급여로, 개인병원 중심으로 이뤄졌다. 2000년대 들어와서 출산율이 본격적으로 떨어지자 지원이 시작됐다. 문제는 2017년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때 비급여 항목을 남겨놨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급여 외에 본인 부담금도 30%를 남겨놓았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 사업을 하면서 돈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기술력이 좋아지면서 비급여 항목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책이다.
A :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정책 효과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난임 정책도, 저출산 정책도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 있는 통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데이터를 근거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하는데, 다른 방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지다 보니 부작용만 나오고 원하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들고,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계속하고 있다.
C : 난임 정책을 저출산과 너무 연결해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돌파구이자 성과로, 사회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가려는 것이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가 왜 저출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야 한다. 여성의 초혼 연령이 31~32세로 형성돼 있고 첫 아이를 출산하는 시점까지 1.5년 정도 걸린다. 결과적으로 만 33~34세에 첫 아이를 낳는다. 만 35세 고위험 상황에서 출산하는 것이다. 국가가 이 상황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난임 정책은 임신을 1, 2년 정도는 늦춰도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생식술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B : 난임이 되기 전 임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선이다. (의학적으로) 여성의 경우 30세가 되면 가임력이 떨어진다. 만 40세 이상이면 자연 유산율이 70~80%로 높아지고 임신 시 모성 사망률도 올라간다. 여성 건강을 고려해서 난임 지원 사업의 대상 연령을 낮춰야 한다. 임신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전한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여성 나이 기준으로 40세 미만은 건강보험으로 급여 지원해주고, 40세 이상은 일정 제한을 두는 바우처 제도로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다.
C : 난임 시술 고차수 여성을 만나서 인터뷰해 보면 부부끼리 시술 횟수나 나이 한도를 두고 합의를 한다고 하더라. 계획을 세워서 그때까지 시술해 보고 안 되면 그만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정부가 무제한으로 지원해주겠다고 나오면서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한 번 더 해 보면 어떠냐는 권유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주는 메시지가 당사자들한테는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다. 주변에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건 정책이 주는 부작용이다.
대표적인 난임 정책 중 하나가 난임 휴가다. 직장을 다니면서 난임 시술을 하는 이들을 위한 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C : 난임 휴가 사용률을 보면 공공기관, 대기업은 괜찮다. 중소기업은 뚝 떨어지고, 영세 기업은 아예 쓰지도 못한다. 실제 많은 여성 근로자들이 일하는 곳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아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실제 난임 휴가를 하루 이틀 늘리는 게 중요할까. 아예 난임 휴가를 쓸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난임 휴가가 6일까지 늘었다고 해도 시술을 시도하는 상황에서는 휴가 일수가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시술을 위해 본인의 커리어를 중단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노동권을 회복하기 위해 난임 시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B : 난임 휴가의 또 다른 문제는 휴가가 며칠인가를 떠나서 난임 시술 때문에 휴가를 낸다고 회사에 말하는 과정에서 시술 사실이 공개된다는 점이다. 난임 휴가라고 따로 둘 것이 아니라 가임기에 있는 직원이 자유롭게 산부인과, 비뇨기과 진료를 눈치 안 보고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본인 부담금 문제도 풀어야 한다.
D : 제도적으로는 잘 만들어져 있는데 활용하지 못하는 문화도 있다. 다만 최근에는 급격히 안정화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난임 휴가는 존재하지도 않고, 육아 휴직도 눈치 보고 못 가는 시대였지 않나. 서울시에서는 난임 휴직, 육아 휴직 후 복귀하면 승진 시 가산점을 준다. 난임 지원 정책 일부가 2022년 지방으로 이양됐다. 중앙 정부가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 C : 난임 정책 지방 이양은 중앙 정부가 전반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취지일 수 있다. 지역의 인구학적 특성, 산업 구조에 따라 지자체의 예산과 계획을 세우라는 취지에서 자율성을 준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표준이 되고 있다. 서울은 다른 지자체와 비교할 수 없는 예산과 인력이 있다. 지원을 막 시작하는 지자체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 적게 지원하면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더 치열한 경쟁과 함께 지역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A : 저출산이라는 중차대한 국가 문제를 두고 정부가 인구 10만명 지자체나 1000만명인 서울시나 알아서 정책을 만들라고 한 것이 가장 잘못된 부분이다. 무책임이다. 지자체도 규모가 다 다르다. 소규모 지자체는 정책을 내놓고 목표를 실현하기 벅찰 수 있다. 게다가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금 정책은 너무 복잡하고 인건비도 많이 들어간다. 통계 생성도 잘 안 돼 있다.
D : 지자체 입장에서는 보건복지부가 난임 정책 가이드라인을 준 다음에 나머지는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라고 넘기니까 사업을 하나씩 할 때마다 사회 보장 협의를 따로 받아야 하는 행정력 낭비가 있다. 난임 시술과 관련해 일정 부분은 중앙 정부가 급여로 커버하고, 그 외 부분은 지자체가 만들어내는 게 바람직하다. 또 보건복지부가 기준을 명확하게 준다거나 통일된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복지부에 요구하는 희망사항이다.
난임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건 무엇이라 보는가? B : 기혼이든, 미혼이든, 동거 중이든 가임력 검사를 해볼 수 있어야 한다. 10대부터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본인 부담금도 0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당장 임신할 생각이 없어도 생식 건강에 관심을 갖는다. 생식 건강은 사춘기부터 20대 초반이 '피크'다. 이 시기에 생식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일을 하고, 문제가 있으면 빨리 전문가를 만나라는 정책적 메시지가 필요하다. 난임 치료 기술은 의학적으로 임신이 안 되는 사람을 치료하라고 나온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경제적으로 난임을 부추기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난임 문제를 의학적으로만 접근하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C : 국가에서 지정하는 난임 시술 병원들을 통해 (난임 관련)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잘 수집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여러 차례 시술을 시도한 사람들, 또 태어난 아이들과 산모의 컨디션이 어떤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책 방향이 바람직한지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난임 시술자가 20대 말부터 40대 중후반까지 다양한데, 실제 이들이 중장년, 노년이 됐을 때 건강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봐야 한다.
A : 출산만큼 중요한 게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이다. 출산 자체에 초점을 두고 난임 정책을 펼 게 아니라 (난임 시술 등으로) 태어나는 아이의 상태를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D : 서울시에서는 난임과 함께 건강한 임신을 위해 준비하는 단계도 중요하게 본다. 시술이 잘 안 됐을 때 마음 상담이나 극복하는 과정의 멘토링도 중요하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