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없어 실효성 의문 지자체마다 ‘제설 의무화’ 불구 이행 안 해도 제재할 방법 없어 과태료 부과 추진도 번번이 무산 “자발적 참여 이끌 방법 고민을”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골목길에선 시민들이 빙판길 위에서 발걸음을 겨우 옮기고 있었다. 관악구에는 이날 오전까지 40㎝가 넘는 폭설이 내렸는데, 눈을 치우지 않은 도로를 중심으로 곳곳에 빙판길이 형성됐다. 아슬아슬하게 유모차를 끌고 가던 주민 김모(36)씨는 발이 미끄러지며 넘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김씨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길인데 순간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넘어질 뻔했다”며 “겨울에 눈이 오면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28일 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빙판길을 걷고 있다. 뉴시스 | 이곳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54)씨는 “어제부터 아침 일찍 나와 가게 앞 눈을 치우지만, 옆 건물은 이틀째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설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골목길 같은 이면도로에서까지 시나 구청에서 눈을 모두 치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일부 시민들의 자발적인 눈 치우기가 제설에 도움된다”고 당부했다. 이틀째 내린 눈이 밤사이 얼어붙으면서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선 빙판길에 따른 낙상 우려가 커졌다. 특히 밤사이 내린 눈이 영하의 기온에 얼어붙으면서 출·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내 집 앞 눈 치우기’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시민의식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제설 의무를 명시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근거로 ‘내 집 앞 눈 치우기’ 관련 조례를 두고 있다. 관악구의 경우 ‘건축물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를 통해 건물 소유자나 세입자가 눈이 그친 뒤 주간 4시간 이내, 야간은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건물 앞 1m 구간의 눈을 치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난안전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재난 대응 의무와 함께 제5조 ‘국민의 책무’를 통해 시민들도 자신의 건물·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자연재해대책법도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 책임을 명시했다. 제설 책임자도 세세히 정해놨다. 건물주가 거주하는 경우엔 소유자·점유자·관리자 순으로, 거주하지 않을 땐 점유자·관리자·소유자 순으로 제설 의무를 진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 확보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 서울 등 중부 지역에 많은 눈이 내린 지난 27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눈을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 2010년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이 제설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건축물관리자에게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했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해외에서는 이미 제설 의무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25~500달러(약 3만5000∼7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영국은 최대 2000파운드(약 353만원)까지 벌금을 물린다. 캐나다 토론토는 105달러(약 15만원), 독일도 지자체별로 최대 수천 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과태료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설 미이행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에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도로나 공공시설의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개인 건물의 경우 소유자나 관리자가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실제 2012년 한 만둣집 앞 빙판길에서 넘어져 다친 시민이 가게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600만원을 받아낸 사례가 있다. 다만 이마저도 ‘예측 가능성’과 ‘관리 소홀 여부’가 관건이어서, 갑작스러운 폭설이나 한파 등으로 빙판이 생긴 경우에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예림·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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