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의 10년 국채 만기 금리가 그리스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28일(현지시간) 유럽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2.946%, 지난해까지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투자 부적격’으로 분류된 그리스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2.950%를 보였다.
유럽의 대표 선진국 프랑스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의 국채 스프레드(금리 차)가 0.004%포인트로 사실상 ‘0’에 수렴한 것이다. 전날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 간 금리 차도 0.87%포인트를 보이며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채권 시장이 프랑스에 대한 대출을 그리스만큼이나 위험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조기 총선에서 좌파, 우파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며 정치적 혼란을 겪은 프랑스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셸 바르니에 정부와 야당은 내년 예산안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하며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바르니에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6.1%로 예상되는 재정 적자를 내년 5%까지 낮추기 위해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상하는 내년 예산안을 제출한 상태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하원 내 좌파 연합은 정부의 사회 복지·공공 서비스 축소로 불평등이 심화한다며 예산안에 반대하고 있다. 극우 국민연합도 개인이나 기업의 세금 부담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며 동조하고 있다.
교착은 계속되고 있다. 바르니에 정부는 다음 달 하원이 계속 반대할 경우 헌법상 권한에 따라 하원 표결 없이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야당은 이에 맞서 정부 불신임안 가결을 경고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채권 시장의 침체는 이어질 전망이다. ING의 미치엘 투커 유럽 금리 수석 전략가는 “불신임안 투표는 현재 예산안의 진행 상황을 재설정하고 새로운 정치적 난항을 겪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BNY멜론 집계에 따르면 프랑스 국채 시장에서 최근 한 주간 2년 만에 최대 자금 유출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심화하고 있는 재정적자의 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와 의회가 관련 조처를 하지 않을 위험을 그만큼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신용평가사 피치, 무디스는 프랑스 신용등급에 대한 전망을 모두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
다만 앙투안 아르망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BFM TV를 통해 “바르니에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폭풍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분명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며 시장 우려를 잠재우는 모습이다. 채권 시장이 그리스와 비교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프랑스는 그리스보다 훨씬 더 큰 경제력, 인구학적 힘을 갖고 있다”며 “프랑스는 그리스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국채 금리가 뛰며 프랑스 증시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프랑스 CAC지수는 지난 5월 사상 최고치인 8259.19에서 이날 7179.25로 약 13%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프랑스 증시는 2010년 이후 유럽 국가 대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진단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니콜라스 수석 주식 펀드매니저는 “프랑스에서는 앞으로 훨씬 더 중요한 주가 하락을 유발하는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며 “아직 바닥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