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논의 중인 의료사고 관련 개혁안을 둘러싸고 의료계와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환자 권리 보호’와 ‘의료진 부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의욕적인 시도이긴 하나,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검토할 점이 있어 보인다. 개혁안의 핵심은 크게 네가지다. 첫째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에 대한 설명과 소통을 제도화한다. 둘째 의료사고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배상체계를 확충한다. 셋째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칭)를 신설해 의료사고 수사의 전문성을 강화한다. 넷째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중대한 과실이 있어야 형사처벌하도록 한다. 다만 이러한 방안은 현실적인 한계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먼저 의료사고 설명·소통 제도화를 살펴보자. 여러 의료사고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초기 소통 부재가 대형 분쟁으로 이어지기 일쑤이다. 따라서 의료진의 유감 표시를 비롯한 소통이 분쟁의 악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유감 표시를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법률에 명문화한다면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법한 녹음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정도로 명문화하지 않는 이상 실제 소송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 모호하다. 의료진은 여전히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상체계 확충 방안에도 현실적인 난관이 있다. 의료사고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의무화하고 일정한 경우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사회보험형 의료체계를 가진 국가 대부분이 비영리 공제조합을 중심으로 의료사고 배상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이러한 체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보험료의 재정적 부담을 의료기관이 지게 된다면 기존 수가체계 등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의료사고심의위 신설도 의도한 것과 같이 운영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부와 의료계, 환자단체, 법조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위원회가 과연 신속하고 일관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또 하나의 절차가 추가됨으로 인해 사건 해결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자문기구라는 특성상 수사기관이나 환자, 의료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때만 운영 의미가 있다. 또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인지 분명하지 않고, 결론이 나오더라도 다른 자료가 있다거나 제출된 자료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로 이의를 제기하면 결국 후속적인 절차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한다는 취지가 달성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형사처벌과 관련해서는 업무상 경과실이 아닌 ‘중대한 과실’로 제한하는 것으로 구성요건을 축소할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중대한 과실의 기준 자체가 현시점에서는 모호하다. 수술 부위 착오나 수혈·투약 오류 등의 명백한 사례는 법률에 예시로 규정하겠다고 하지만, 의료행위의 특성상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복합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의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라면 무엇이 중대한 과실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해선 앞서 본 의료사고심의위의 판단에 많은 것이 달려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자문기구인 위원회의 결정이 의료현장의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오히려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불만을 키울 수도 있다. 이번 개혁안은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환자 권리구제와 의료진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시도로 보인다.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 확대나 의료분쟁조정제도의 혁신 등으로 분쟁을 조기 해결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의료사고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인한 과밀화,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로, 의료수가 체계의 왜곡으로 인한 필수의료 기피 현상 등이 의료사고의 근본 원인인 탓이다. 이번 개혁안이 이들 중 일부를 해결하려 마련됐지만, 다른 원인도 직접 해소해야 한다. 정부는 2차 의료기관 육성과 1차 의료 혁신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다만 지역별 의료 격차 해소, 의료인력 양성과 처우 개선, 의료수가 현실화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의료사고 개혁안만으로는 의도한 바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의료체계 전반의 개혁은 단계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우선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의료진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환자 안전관리 체계를 보강해야 한다. 의료사고 및 분쟁이 발생하면 그 해결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진 간의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 단순히 법적 책임만 따질 게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함께 분석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 신속한 해결과 충분한 보상은 그 결과로 따라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개혁이든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실질적인 개혁만이 의료사고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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