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2025'를 놓치지 말라. 그것이 진짜 도널드 트럼프다. "
미국 대선을 110일가량 앞둔 지난 7월 중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가 진보 매체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내놓은 경고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정책들로 논란에 휩싸인 프로젝트 2025를 두고 트럼프 당시 후보마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나와는 무관하다"고 선 긋기에 나선 직후였다.
이제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는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 11·5 대선의 승자가 확정된 후, 프로젝트 2025에 담겼던 주요 정책 제언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으로 하나, 둘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발표된 2기 행정부 주요 보직에도 프로젝트 2025 공동 저자 또는 참여자들이 적지 않게 포함됐다.
"나와 무관해" 주장했던 트럼프…프로젝트 2025 뭐기에 프로젝트 2025는 미국의 보수성향 정책 연구기관인 헤리티지 재단 주도로 작성된 정책 보고서다. 약 990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에 대비해 2022년부터 마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2.0 공약집' 등으로 불려왔다.
특히 대통령 권한 강화, 성 소수자 권리 축소, 대규모 이민자 추방 등 초강경 우파 정책 제안들이 주를 이루면서 이번 대선 내내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층으로부터 '민주주의 위협'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아왔다. 강경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당선인마저도 대선 여론조사가 초접전 구도였던 후보 시절엔 중도·온건 성향 표심의 이탈을 우려해 "일부 제언은 동의하지도 않고, 일부는 터무니없다"고 여러 차례 거리두기에 나섰을 정도로 극단적인 정책들이 대거 포함됐다.
프로젝트 2025의 주요 골자는 수정헌법에 명기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동성애 권리를 철폐하고,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를 축소하고, 연방정부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키는 내용 등으로 요약된다.
가장 앞부분에 담긴 ‘정부의 고삐 잡기(Taking the Reins of Government)’ 섹션을 살펴보면 직업 공무원 위주로 구성된 연방인력의 상당 부분을 마음대로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도록 개편하도록 제언하는 내용이다.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말기에 국정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을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스케줄 F’ 행정명령을 추진했던 것과 비슷하다. 프로젝트 2025는 이에 따라 비워진 자리는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이들로 채울 것도 제언한다.
대통령 권한 강화를 위한 연방정부 개편 측면에서는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상무부, 연방거래위원회(FTC), 연방통신위원회(FCC) 등의 정치적 독립성을 박탈하고 당파적 통제에 따르도록 했다. 민주당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층 역할이 커졌던 환경보호청(EPA) 축소,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교육부 폐지 내용도 포함됐다. 연방 교육부가 성별, 인종에 대한 극단적인 이념을 전파한다는 이유다. 그간 트럼프 당선인은 '인종차별 금지 교육'을 없앨 것도 주장해왔는데, 프로젝트 2025 역시 이러한 인종차별 교육이 오히려 백인을 차별하고 있다며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종료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프로젝트 2025에는 대중 시위에 연방 군대 동원을 허용하는 등 미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규정하며 성적 지향,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경구용 임신중절약을 금지시키고 반음란법으로 불리는 '콤스탁 법'(Comstock Act of 1873)을 통해 피임·낙태약을 발송하는 사람들을 기소하는 등 전국적인 낙태 불법화를 위한 제반조치도 대거 포함됐다.
이민 정책과 관련해서는 불법 이민자 체포, 구금, 대규모 추방은 물론, 합법적인 비자 쿼터까지 축소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구금 및 추방 과정에서 법 집행을 위해 군 동원까지 권고했다. 현지 언론들은 불법 이민자 추방은 민주당 행정부에서도 계속 이뤄져 왔다면서도 무엇보다 프로젝트 2025가 이민자를 악마화하고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밖에 오바마 케어의 축소 또는 폐지 등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무효화하길 원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기 주요 정책으로 현실화…내각엔 집필자들 합류 주목할 부분은 트럼프 당선인이 앞서 선 긋기에 나선 것과 달리, 대선 승자로 확정된 후 프로젝트 2025 내 극우 정책들이 차기 행정부 주요 정책으로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익 싱크탱크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가 트럼프 2기에 대비해 300개가량 작성해둔 것으로 알려진 행정명령 초안에도 프로젝트 2025와 일치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불법이민자 추방은 일찌감치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첫날 단행하겠다고 예고해온 최우선 공약이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국경 차르' 역할에 프로젝트 2025 참여자 중 한 명인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을 지명하며 이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또한 트럼프 당선인은 최측근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차기 행정부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발탁하며 연방정부 구조조정 칼자루도 쥐여주었다. 머스크 CEO가 최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서 폐지를 주장한 소비자 금융 보호국(CFPB)의 경우, 프로젝트 2025에서도 '정치적'이라며 폐지 대상으로 거론됐던 기관이다. 현지에서는 머스크 CEO가 지난주 X에 눈엣가시 공무원을 노골적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서도 "트럼프 충성파로 채우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특히 프로젝트 2025의 현실화는 2기 내각 인선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백악관 예산관리실(OMB) 실장으로 재지명된 러셀 바우트 외에도 호먼(국경차르), 존 랫클리프(중앙정보국(CIA) 국장), 브렌던 카(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피트 훅스트라(캐나다 주재 미국 대사), 스티븐 밀러(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 등이 프로젝트 2025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이다. 특히 프로젝트 2025 설계자로 알려진 바우트 전 실장의 경우, 2기 출범 초기 의회를 거치지 않고 속전속결로 단행할 수 있는 행정명령 리스트를 감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바우트는 자신이 이끌 부서에 대한 프로젝트 2025 챕터를 집필했고, 카 역시 마찬가지"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AFPI 정책집 공동 저자인 마이크 왈츠(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FPI 이사회 의장인 린다 맥마흔(교육부 장관), 대표 출신인 브룩 롤린스(농림부 장관) 등 프로젝트 2025와 맥락을 같이 하는 AFPI 관련 인사들도 2기 행정부에 이름을 올렸다.
악시오스는 프로젝트 2025의 핵심은 2기 행정부 고위직뿐 아니라, 차기 행정부를 트럼프 충성파로 채우는 것이라며 향후 실무진 인선 역시 이를 기준으로 발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복스는 "이미 프로젝트 2025가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 침투했다"고 전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