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 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서 일어냐야겠냐"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나라가 평안해야 냥이(고양이)도 행복하다" (범야옹연대) "복학 전에 탄핵하라" (전국 휴학생 연합회)
7일 서울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집회에는 이름을 보고도 단체 성격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단체 깃발들이 나부꼈다.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협회 서울지부', '전국얼죽코(얼어죽어도 코트)연합회', '걸을때 휴대폰 안 보기 운동본부'…이 밖에도 "눈사람을 안아주세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등 단체명도 들어가 있지 않고 그 뜻도 모호한 깃발 또한 눈에 띄었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말 그대로 '아무말 깃발 대잔치'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자신의 신분이나 취미 외에도 반려동물, 기호품 등을 담은 재치 넘치는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깃발을 만들지 못한 시민들은 즉흥적으로 '전국 깃발 준비 못한 사람 동호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깃발에는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문구가 담겨 있어 탄핵 촉구 집회가 이들에게 얼마나 급선무였는지를 새삼 짐작하게 했다. 이들 외에도 또 다른 '게으름 고수'인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도 집회에 참가했다. 한 시민은 'OTT 뭐 볼지 못 고르는 사람들 연합회'를 조직해 "아무거나 규탄한다, 뭐가 됐던 반대한다, 이것저것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도 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전묘조','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똥강아지 산책연합', '과체중 고양이 연합','전국고양이집사노동조합(참야옹)' 등을 만들어 집회에 참가했다. 개·고양이뿐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자이언트 판다로 지난 4월 중국에 반환된 푸바오의 팬들도 '푸바오의 행복을 바라는 모임'을 조직했다. 이들이 만든 깃발에는 푸바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 '얼죽아', '삼각김밥 미식가', '민초단' 등 깃발을 통해 자신의 식성을 드러낸 시민이 있는가 하면, '전국 거북목 협회', '전국 혈당 스파이크 방지 협회', '전국 수족냉증 연합','테니스 엘보 환자 연합' 등 건강에 관심 많은 이들도 집회에 함께했다.
이러한 '아무말 깃발 대잔치'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특정 단체와 무관한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서면서 노동·시민단체나 노조 이름 등을 패러디한 깃발을 만들고 시위에 참가한 것이 시작이었다. 눈길을 끌었던 깃발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패러디한 '전견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패러디한 '전국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을 따라한 '민주묘(猫)총', '만두노총 새우만두노조' 등이 있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