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맞춰 사임할 계획이라고 11일(현지시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FBI 국장으로 캐시 파텔 전 국방장관 대행 비서실장을 지명하며 사실상 '불신임' 압박을 받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FBI가 미국 언론에 공개한 발언 요지에 따르면 레이 국장은 이날 FBI 직원들과의 타운홀 행사에서 "몇 주간 숙고한 끝에 내년 1월 현 행정부가 끝날 때까지 일하고 물러나는 것이 FBI에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레이 국장은 "내 목표는 여러분들이 매일 미국 국민을 위해 하는 필수적인 일인 우리 사명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내 생각에 이것(사임)이 우리의 업무 수행에 매우 중요한 가치와 원칙을 강화하면서, FBI가 혼란 속으로 더 깊이 끌려 들어가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사임 결정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이곳을 사랑하고, 우리의 사명을 사랑하고, 이곳 사람들을 사랑한다"며 "그렇지만 내가 집중해왔고,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FBI를 위해 옳은 일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1기 때인 2017년 임명돼 새 행정부 출범 뒤에도 임기(10년)가 2년여 남아 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캐시 파텔 전 국방장관 대행 비서실장을 차기 FBI 국장으로 발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레이 국장은 자진해서 사퇴하지만 사실상 트럼프 당선인의 압박에 물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한 새 FBI 국장이 취임하려면 임기가 남은 레이 국장이 자진 사임하거나,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레이 국장을 해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이 현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첫 임기 뒤 기밀자료 반출 및 불법 보관 혐의에 대한 수사에서 FBI가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을 압수 수색한 이후 트럼프 당선인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CNN은 레이 국장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레이 국장이 질서 있는 전환을 촉진하고 싶어하지만, FBI 내부에서 레이 국장의 사임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싫어하는 FBI 국장을 교체하는 경향이 일반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고 수사기관인 FBI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장 임기를 10년으로 정한 취지가 퇴색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에도 임기가 남아 있는 FBI 국장을 해임한 바 있다.
레이 국장의 후임자로 내정된 파텔은 2020년 대선을 '사기'로 규정했다. 트럼프 당선인 재집권 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승리를 도왔다고 판단하는 언론인 등에 대해 사실상의 '보복'에 나설 것임을 예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