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2034년 월드컵 단독 개최지로 선정된 가운데 전세계 인권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인권단체들은 2022년 개최됐던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주노동자 6700여명이 가혹한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며 개최에 반대하고 있다. 가뜩이나 여성인권 및 언론의 자유 탄압으로 인권문제가 극심한 사우디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면 그 자체로 국가이미지가 세탁되는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 나타날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11일(현지시간)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은 211개 회원국이 회상회의로 참가한 임시총회를 통해 2030년과 2034년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총회 결과 2030년 월드컵은 스페인과 포르투칼, 모로코 3개국이 공동 개최하고, 2034년 대회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단독개최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당초 2034년 월드컵은 공동개최 의사를 밝혔던 호주·인도네시아와 사우디 간 2파전으로 전개됐으나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가 사우디 지지로 선회했고, 이후 호주도 대회유치를 포기한다고 발표하면서 사우디만 단독 후보로 남게 됐다. 사우디는 해당 월드컵 유치를 국가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준비했으며,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로비에 나서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우디의 월드컵 유치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전세계 인권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제인권감시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인권 및 언론의 자유 탄압, 성적소수자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인권 취약국가인 사우디에서의 월드컵 개최는 그 자체로 스포츠 워싱이 될 것"이라며 "사우디의 월드컵 개최를 뒷받침할 이주노동자들도 각종 채용수수료와 임금체불, 강제노동 등 광범위한 학대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유린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엠네스티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 당시 경기장과 신도시 건설 등을 위해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유입된 이주노동자들 중 6751명이 사망했다. 스티브 콕번 엠네스티 노동인권 및 스포츠 책임자는 "적절한 인권 보호가 마련되지 않은 채 2034년 월드컵 개최권을 사우디에 주기로 한 피파의 무모한 결정은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계 일각에서도 사우디의 월드컵 개최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미국 민주당의 론 와이든(오리건주)과 딕 더빈(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은 피파 측에 "사우디가 아닌 인권을 보호하는 개최국을 찾기를 촉구한다"며 "사우디는 반체제 인사를 고문하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하며 외국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나라"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다만, 피파는 사우디의 인권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피파는 지난달 말 공개한 사우디의 월드컵 유치보고서에서 사우디의 유치 조건에 대해 역대 월드컵 유치국 중 최고점인 5점 만점에 4.2점을 부과했다. 피파는 보고서에서 "월드컵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사우디의 긍정적인 인권 방향에 기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