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필수요소'로 자리 잡은 건 핫팩도, 응원봉도, 커피도 아니었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대규모 인파가 운집한 공간에서 화장실 수요가 폭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화장실 확보를 둘러싸고 시위대와 민간 업체 간 갈등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화장실 지도'가 제작된 이유다.
12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여의도 화장실지도'라는 웹사이트가 공유되고 있다. 이 웹사이트는 국회의사당 근처 공용, 민간 화장실을 표기한 인터랙티브 맵으로, 한 누리꾼이 제작해 유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장실은 이미 '광장 민주주의'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7일 여의도 인근에 운집한 시위 참여자의 숫자는 (집회 측 추산) 약 100만명. 이들이 수 시간에 걸쳐 같은 장소에 머물려면 당연히 화장실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
실제 SNS, 커뮤니티 등에는 '화장실 공간 확보'가 시위대의 최우선순위로 떠올랐다. 공원 내 공공 화장실 위치를 공유하는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화장실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다.
화장실은 시위대와 민간 업체 사이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지난 7일 당시 여의도에 있는 A 호텔 입구엔 "호텔 이용객 외 출입금지. 외부인 화장실 사용 불가"라는 문구가 담긴 안내판이 세워졌다. 한 누리꾼이 공유한 영상을 보면, 호텔 직원이 건물로 들어가려는 집회 참가자를 막아서기도 했다.
해당 사진과 영상을 접한 일부 시위대는 호텔에 '별점 테러'를 퍼부었다. "시위대는 손님이 안 될 것 같나", "화장실로 갑질하나", "계엄 반대 호텔이냐" 등 날 선 반응을 쏟아냈다. 이 사태는 누리꾼 사이에서도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선 "왜 사유지를 시위대에 개방해야 하나",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거 아니냐" 등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이 커진 가운데 호텔은 뒤늦게 화장실을 개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의도 화장실지도'는 이런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도는 단순히 여의도 건물 내 화장실 위치만 표기한 게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 화장실인지, 혹은 사유지이지만 제삼자에게 개방한 '개방 화장실'인지 여부를 색깔과 텍스트로 세세하게 표기했다.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화장실은 검정 마크로 표기해 시위대와 업체 사이 갈등도 방지했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공중화장실의 중요성을 통감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민주주의는 화장실을 필요로 한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 국내 공중화장실 인프라는 위생은 물론 공공복리 증진과 '시민 사회' 자체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한국화장실협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엔 5만8248개의 공중화장실이 설치됐으며, 이 가운데 4만748개소가 공공기관 건물에, 5252개가 공원에 설립됐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