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국가별로 올해의 단어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미국 유명 사전출판사 메리엄웹스터가 올해의 단어로 '양극화(Polarization)'를 선정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 소비로 뇌가 멍해진 상태를 이르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뽑았다.
남반구 호주에서도 올해의 단어가 발표됐다.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다. AFP통신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호주의 맥쿼리 사전이 엔시티피케이션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맥쿼리 사전은 '특히 온라인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품질의 저하와 이익 추구의 결과로 서비스나 제품이 점차 악화하는 현상'으로 이 단어를 정의했다.
영어 단어 '배설물'의 속어(shit) 앞뒤로, '~하게 만들다'란 뜻의 접두사(en-)와 '~화(化)'란 뜻의 접미사(-fication)가 결합한 신조어다. 우리말로는 '점진적 열화(劣化)' 또는 '똥망화' 정도의 뉘앙스를 갖는다. '엔시트화'란 축약된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맥쿼리 사전위원회는 엔시티피케이션을 "거의 공식적이고 존중할 만한 단어로 승격시키는 접사로 감싸버린 매우 기본적인 앵글로색슨 용어"라고 설명했다. 미국 언어 학회는 이 단어를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엔시티피케이션은 캐나다 소설가 코리 닥터로(Cory Doctorow)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2022년 11월 15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조용한 퇴직(Social Quitting)'에서 페이스북,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수년에 걸쳐 어떻게 쇠퇴하는지 그 붕괴 패턴을 이 용어를 들어 설명했다.
엔시티피케이션의 대략적인 과정은, 먼저 각 플랫폼은 처음엔 양질의 무료 서비스로 이용자를 모아 성장한다. 그다음 플랫폼은 모인 이용자 데이터로 광고주를 유치한다. 이후 수익 확대를 위해 광고를 늘리거나 과금제를 도입한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보다 광고가 많아지거나 가짜 뉴스, 스팸 따위의 질 낮은 콘텐츠가 범람하기 시작한다. 결국 플랫폼의 질이 급격하게 악화한 끝에 이용자들이 떠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검색포털, SNS 등 플랫폼의 엔시티피케이션 현상은 디지털 플랫폼의 급격한 성장을 설명하는 동시에 이들이 직면한 중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 검색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에 있던 네이버의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진 사실도 엔시티피케이션 현상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18일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발간한 'ICT 브리프 2024 39호'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 검색 시장에서 네이버의 점유율은 57.32%로 집계됐다. 9년 전인 2015년(78.06%) 같은 기간보다 약 20%포인트 떨어졌다.
네이버는 출시 초기 네이버 지식인, 메일 등으로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이용자가 점차 늘어나자 음식점, 카페나 온라인 쇼핑몰을 위한 검색 광고 시장이 형성됐다. 이젠 네이버 검색창에 특정 지역의 맛집을 검색하면, 광고비를 낸 식당들이 가장 먼저 노출된다. 일부 이용자에겐 불필요한 검색 결과로 비춰질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엑스와 비슷한 점진적인 열화 과정을 겪는 셈이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