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로마 방문 중 이탈리아 시민권을 공식 취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탈리아 정치권과 여론이 들끓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외무부는 지난 13일 밀레이 대통령의 혈통을 근거로 특별 신속 절차를 통해 시민권을 부여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여동생 카리나도 시민권을 받았다.
밀레이 대통령은 조부모 3명이 이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75% 이탈리아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밀레이 대통령의 신속한 시민권 취득을 두고 강력히 반발했다.
중도 좌파 성향 정당 '+에우로파'의 리카르도 마지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밀레이 대통령에게 이탈리아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이곳에서 태어나 영구적으로 거주하면서도 오랜 세월 시민권을 기다리고 때로는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는 소년·소녀들에게 또 한 번의 모욕"이라고 썼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며 일하고 세금을 내는 이민자 자녀들이 진정한 이탈리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밀레이 같은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한 이탈리아인"이라고 비판했다.
안젤로 보넬리 녹색당 대표는 "왜 밀레이 대통령에게는 신속 절차가 적용되고, 다른 수많은 신청자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가"라며 분노했다.
이탈리아의 시민권 취득 요건은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영토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모가 외국 국적이면 18세가 돼야 시민권 신청이 가능하다. 지독한 관료주의 탓에 시민권 취득 절차에 최장 4년가량 걸리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들은 20대 초반에야 비로소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똑같이 정규 교육을 받고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이지만 생후 20년간은 법적으로 이탈리아인이 아닌 다소 모순된 현실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8월 파리올림픽에서 다인종·다민족 선수로 구성된 여자배구 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을 계기로 국적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시민권 신청에 필요한 10년 거주 요건을 5년으로 단축하고, 이 제도의 수혜자가 자녀에게 새로운 국적을 곧바로 물려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다. 국적법 개정안은 국민투표에 필요한 50만명의 서명을 확보했고 현재 헌법재판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한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총리 관저인 로마의 키지궁에서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회담했고, 전날 이탈리아 집권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연례 정치 행사 '아트레유 2024'에 참여해 연설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