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력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4년간의 부재 끝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것은 모든 곳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미국인의 절반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이들의 두려움을 간결하게 요약했기 때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저열한 자들의 지배(The rule of the worst)' 정도로 번역된다. 그리스어 형용사로 '나쁜, 못된'이란 의미인 카코스(Kakos)의 최상급 '카키스토(Kakisto)'에 지배·통치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결합한 용어다.
이 단어의 유래는 17세기 영국 내전, 청교도 혁명과 관련 있다. 영국 내전 당시 왕당파가 의회파를 공격할 때, 아리스토크라시(Aristocracy·귀족정)의 반대말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아리스토크라시를 교양과 품위 있는 통치로 규정한 이들이 중우정치(다수의 어리석은 군중이 이끄는 정치)를 비판한 것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선 부패하고 무능한 최악의 인물이 통치하는 체제를 비판하는 시사 용어로 자리잡았다.
영국 내전의 원인은 과세 문제 때문이었다. 1628년,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주변국과의 전쟁 자금 충당을 위한 막대한 세금을 국민에게 부과하려다 의회파와 충돌했다. 의회는 강제 과세에 대항하면서 국민의 자유권을 요구하는 권리청원을 국왕에게 제출했다. 찰스 1세는 일단 동의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다음 해인 1629년 돌연 의회를 해산하고 의원 9명을 체포했다.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 신봉자였다. 신이 내린 왕권은 법 위에 존재했다. 의회를 무시하고 독재를 펼친 찰스 1세와 의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1642년 국왕을 따르는 왕당파와 반대파인 의회파 간 전쟁이 터졌다. 전쟁 끝에 사로잡힌 찰스 1세의 목이 잘리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청교도들이 의회파의 주요 세력이어서 청교도 혁명이라고 불린다.
잊혀가던 카키스토크라시는 2017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함께 되살아났다.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4일 전인 16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연재 칼럼을 통해 "트럼프는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맹렬히 비난하고 위협하는 동시에 자신이 유권자 투표에서 졌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며 "미국식 카키스토크라시(American kakistocracy), 즉 최악에 의한 통치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9일 그는 마지막 칼럼을 내고 또 한 번 카키스토크라시를 언급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한 달여 앞둔 미국 상황을 카키스토크라시로 규정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등장하고 있는 카키스토크라시에 맞선다면, 우리는 결국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해 정국' 속에 이 단어가 더욱 부각됐다. 과거 탄핵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자들과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치 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