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사건 첫 재판이 증거열람 문제로 사실상 공전했다. 검찰 측에서 '수사 중'이란 이유로 피고인 측의 증거열람을 거부한 탓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 편의'로 재판이 지연돼선 안 된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17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 심리로 열린 손 전 회장의 처남 김모씨(67), 우리은행 전 본부장 임모씨(58), 우리은행 전 부행장 성모씨(60)의 첫 공판기일에서 피고인들이 증거기록 열람을 하지 못해 김씨를 제외한 두 피고인은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손 전 회장의 처남 김씨 측은 자신에 대한 특정경제범죄법 상 사기 및 횡령, 사문서위조 등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손 전 회장의 처남 김씨는 지난 9월24일 구속기소됐다. 이후 임 전 본부장은 지난 10월15일, 성 전 부행장은 지난달 18일 각각 순차 기소됐다. 사건 관련자 첫 기소 이후 약 석 달이 지나서야 열린 첫 공판인데 검찰 측에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증거열람을 거부해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특히 피고인들이 모두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가장 먼저 구속된 김씨의 경우 1심 최대 구속기간(6개월)의 절반을 사실상 날린 셈이다.
담당 재판장은 검찰을 향해 "(사건접수 이후) 석 달이 다 돼가는데 (피고인) 구속기간 동안 무엇을 하라는 건가"라며 "오로지 수사 편의만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검찰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피고인 측이) 증거기록 열람등사 후 검토를 마쳐야 재판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행이 어렵다"며 "검찰 측에서 오늘에라도 협조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사실상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된 손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여부도 쟁점이다. 결국 손 전 회장이 기소될 경우 사건이 병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김수홍)는 손 전 회장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이에 따라 추후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
재판장은 "원칙적으로는 기소 이후 모든 절차는 법정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공범 수사라고 해서 뒤늦게 조사한 내용이 증거로 제출되면 이 원칙이 깨진다"며 "이 경우 해당 서류들은 증거목록에서 부정된 판결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구속기소된 이후 증거기록을 열람하지 못해 방어권 행사에 큰 제약이 있다"며 "이런 사정을 고려해 보석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은 내년 2월11일 열릴 예정이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