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 예고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기업들이 생산시설 이전, 유럽 및 내수 시장 비중 확대 등 각자도생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 "자칭 '관세맨'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에 복귀하게 되면서 중국 기업 임원들과 공장 관리자들이 2차 미·중 무역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대선 유세 기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중국에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모자, 스카프, 장갑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중국 의류 제조업체 수퍼브인터내셔널은 전체 수출의 30∼35%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의 매출 타격을 대비해 유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업체 측은 보통 1~2만개가량의 제품을 주문하던 미국 고객사들이 불확실성을 우려해 벌써 주문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업체에서 만든 모자 하나가 출고해 배송이 완료되는 데까지 일반적으로 2개월이 걸리는데, 그때쯤이면 취임식을 마친 트럼프 당선인이 얼마나 큰 규모의 관세를 부과할지 현재로선 예측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업체는 "이는 미국 고객들에겐 너무 가혹한 환경이고 변수가 너무 많다"며 "그만큼 우리는 유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진출 대신 내수 비중 확대를 선택한 기업도 있다. 미국이 회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금속 주물업체 다왕금속은 "지금이야 해외 수익이 더 높았기 때문에 주로 수출하지만 상황이 여의찮다면 대량 주문 의향이 있는 중국 고객에게 다시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밝혔다.
금속 주조는 제조 공정 자체가 에너지 집약적이고 중국에서 금속과 주조 모래와 같은 원자재를 확보해야 하므로 생산 시설 이전의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관세 인상이 오히려 중국산 원자재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관세 장벽으로 기업들이 미국에 매장을 열도록 유도하려는 트럼프의 계획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오프쇼어링에 나선 사례도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한 스포츠용품 제조업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베트남 공장 건설 계획을 수립했고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이 공장에서 유럽·미국 수출용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라면서 "우리는 관세에 맞서 싸울 수단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같은 모든 유럽 주요국에 극우 세력이 득세해 덩달아 보호무역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며 최선책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건강용품 업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관세 부과에도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가 시장 점유율을 잃는 피해를 본 뒤 동유럽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업체는 트럼프 당선인의 10∼20% 보편 관세 공약에 대응해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방안도 고려 중이며, 동남아시아·남미 등으로의 판매로 개척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업체에서 투자 및 개발을 담당하는 한 임원은 회사가 2028년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이 트럼프 당선인의 횃불을 이어받을 경우의 수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단순히 앞으로의 4년뿐만 아니라 '십년대계'를 계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