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수출통제를 실시하기로 하자 중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에 나섰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를 일주일 앞둔 13일(현지시간) AI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를 한국 등 동맹국에는 제한 없이 판매하고, 동맹국도 우려 국가도 아닌 국가에는 AI 반도체 수입 한도를 설정하는 신규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미국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접근 제한을 받고 있는 중국이 제3국을 통해 첨단 AI 반도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국가별 AI 반도체 수입상한제 발표 직후 "이번 조치는 중국과 제3자 간 정상적인 무역 행위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함부로 간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가 업계의 합리적인 목소리에 귀를 닫고 성급하게 조치를 발표한 것은 국가안보 개념을 확대하고 수출 통제를 남용한 사례"라면서 "이는 국제 다자간 무역 규칙의 명백한 위반행위로, 중국은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350자의 짧은 입장문에서 '심각하게'라는 단어를 네차례나 반복하며 미국 측 조치를 강력 비판했다. 대변인은 "바이든 정부는 수출통제 조치를 남용해 여러 국가의 정상적인 교역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시장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며 "중국은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히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美, AI 반도체 수량한도 설정…中 우회수입 겨냥 이날 미국 상무부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20여 개 우려 국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기존 수출 통제를 유지하되 동맹국도, 우려국도 아닌 나라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AI 반도체 수량에 한도를 설정했다. AI 반도체 수입 수량에 제한받게 된 국가는 '국가별로 검증된 최종 사용자(NVEU)' 지위를 얻지 못할 시 국가별로 할당된 5만 개 그래픽처리장치(GPU) 구입 쿼터 안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정부가 임기 막바지에 이 같은 조치를 발표한 건 중국이 미국의 수출 규제망을 피하기 위해 제3국을 통해 첨단 반도체를 들여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2023년 사양이 낮은 AI 칩의 대중 수출도 금지했다. 그러나 중국 측이 싱가포르 등 해외에 소재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엔비디아 AI 가속기를 구매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해 외신 보도로 전해지기도 했다. 반도체 굴기를 이어오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수입량은 미국 제재 여파에도 늘어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으로 수입된 반도체는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업계도 사업 성장 둔화를 우려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엔비디아의 네드 핀클 대관 담당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시장 결과를 조작하고 경쟁을 억압함으로써 미국이 힘들게 얻은 기술적 이점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며 "미국은 혁신과 경쟁, 전 세계와 기술을 공유하며 승리하는 것이지, 정부의 과잉 개입이라는 벽으로 후퇴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이번 조치를 뒤엎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조치에는 120일간의 의견 수렴 기간이 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대로 의회 검토법(Congressional Review Act·행정부 새 규정을 의회가 폐지할 수 있는 권한 부여한 법) 입법 등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라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후에도 이번 조치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한 정도를 조정할 수는 있지만, 핵심 부분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