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경제사학자이자 미 하버드대, 런던정경대(LSE) 등 유수의 대학 기관에서 교수를 역임한 니얼 퍼거슨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현대의 황제'로 지칭해 관심이 쏠린다. 수많은 개별 문화권을 직·간접적으로 통치했던 고대 로마나 중국과 현대 미국이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다.
퍼거슨은 최근 미국의 국제 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기사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마러라고의 군주"라고 칭했다. 마라라고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별장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이곳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승리 축하 파티가 열렸을 때 전 세계 각지의 유력 인사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퍼거슨은 "트럼프 당선인의 영향력은 단순한 대통령 당선인 그 이상"이었다며 "그는 국왕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지난 수백년간 미국식 대통령제가 결국 나폴레옹이나 아우구스투스 같은 '황제'를 만들지 모른다고 우려했는데, 사실이 됐다"고 평했다.
그는 전 세계의 권력자들과 기업인, 유명인들이 마러라고로 몰려든 게 그 증거라며 "세계의 최고경영자(CEO)들 모두 트럼프 당선인에게 조공을 바친다. 애플의 팀 쿡은 100만달러(약 14억6000만원)를 바쳤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도 예를 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이 다가오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발 빠르게 전략을 재고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플랫폼 내 팩트체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도 중단하기로 했다. 국내 현대차그룹도 트럼프 당선인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러나 퍼거슨은 '미국식 제정'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원래 대통령이 진짜 군주 같은 힘을 갖길 원했다. 한 번 당선되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통치하며, 국회의 요구를 영구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을 가지길 원했다"며 "대신 미국은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치르며 비토권의 한계도 명확한 대통령제를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오는 20일 취임하면 미국의 오랜 대통령제가 다시 작동할 것"이라며 "임기 절반까지는 미 의회 과반을 통해 권력을 휘두르겠지만, 중간 선거 때 과반을 잃는다면 약화한다. 지금은 무한해 보이는 그의 권한은 '국왕의 출현'을 막기 위해 고안된 헌법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