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개학까지 약 50일이 남은 가운데 AI 디지털교과서 관련 논란이 더 거세지고 있다. '교육자료 격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혼란 탓에 교과서 개발사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교육청은 교육감 성향별로 지역별로 중구난방 다른 방침을 내놓고 있다.
AI 교과서 올해 첫 적용 앞두고 국회에서 제동 14일 전국교직원노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을 즉각 공포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전교조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숙고 없이 강행처리를 한다면 교육부가 주장하는 맞춤형 교육이 아닌 획일적, 강제적 학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 수준별 맞춤 수업을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AI가 학생 수준에 따라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 서책 교과서와는 별도로 '익힘책'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계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정책 추진 내내 우려 목소리가 잇달았다.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과몰입에 대한 걱정부터, 정책 자체가 너무 빠르게 추진돼 교사 연수와 공감대 형성 등 준비가 미비하다는 점에서다. 2023년 6월 추진방안 발표부터 적용까지 모든 과정이 1년 반 만에 끝났다.
이런 가운데 야당 주도로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법적 지위를 낮추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하며 앞으로의 일정이 깜깜해졌다. 학교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교과서'와 달리 교육자료는 자율적으로 각 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재의 요구 건의와 함께 올해 1년간은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학교가 AI 디지털교과서를 자율 선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년간 사투 벌였는데… AI교과서 발행사 '반발' 법안이 통과되자 2년간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해 검정까지 받은 개발사들이 반발했다. AI 디지털교과서 발행사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로 교과서로의 지위를 잃고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발행사 및 에듀테크 업체들은 개발비 회수는 물론 인력 유지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고용 유지 문제가 심각한 상태가 될 것"이라며 법안 백지화를 요구했다.
법정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발행사 관계자는 "교육부가 재의 요구를 한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 될 경우 적극적으로 헌법소원을 할 예정"이라며 "(교육부가) 1년 유예나 1년 자율 신청을 하겠다는 경우 행정소송을, 발행사 손실 발생 시 민사소송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1년간 자율 선택'으로 한발 물러선 데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발행사 측은 "1년간 자율 선택을 한 다음에 의무 도입을 시행하겠다고 하지만, 그 의무 도입에 대해 어떠한 것도 담보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동일한 혼란 상황이 똑같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난감한 것은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가 불분명해지면서 교육감 성향에 따라 교육청별로 제각기 다른 방침이 쏟아지고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교육 효과가 확실히 검증된 후에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지, 충분한 교육적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쓰는 것은 성급하다"면서도 "학교에서 선택한다면 교육청에서 학교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자료로 유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정책적 입장에서 저희는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에 따라 가격 변동 폭도 커질 수 있다. 발행사인 YBM의 신동희 부장은 "교과서의 지위가 없어졌을 때 개발사가 지불해야 하는 저작권 비용이 엄청나게 커 구독료도 자연스레 인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참고서의 경우 저작권료가 교과서와 많게는 20~30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느냐다. 오는 21일께 국무회의에 재의요구 건의안이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로 법안이 돌아갈 경우 재의결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 출석·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에 미달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야당은 법안 재발의 등 대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