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을 부여하는 법안이 또다시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불법개설 의료기관'을 신속하게 적발하기 위해 특사경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수사권 부여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적발한 불법개설 기관은 총 58개소, 환수가 결정된 보험료·요양급여비는 2776억9500만원에 달했지만 이 가운데 7.7%인 214억1800만원만 징수됐다.
25일 국회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날 법사위를 열고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
특사경 제도는 이른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을 막기 위해 일반 사법경찰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건보공단 직원이 권한을 받아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사람(사업주)이 의료인(의사)을 고용해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 명의로 개설, 운영하는 것이 사무장병원이다.
면허대여약국 역시 약사법상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약사를 고용해 그 명의로 운영하는 약국이다.
이같은 불법개설 기관들은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환자를 무리하게 입원시키거나 서류상으로 가짜 환자를 만드는 등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이런 기관들이 적발되는 즉시 빠르게 폐업하고 재산을 처분하거나 은닉하며 압류를 피하는 반면, 경찰 수사에는 평균 11개월이나 걸린다는 점이다.
건보공단은 현재도 행정조사 업무를 하고 있어 전문성이 있는 만큼, 특사경이 도입되면 수사 기간을 3개월가량으로 줄이고 불법개설 기관들의 재정 은폐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 계속 특사경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법률안 통과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도 비공무원에게 수사권을 주는 부분에 대한 문제 등을 놓고 법사위 위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현재도 건보공단의 현지 조사 등으로 인해 병·의원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은데, 형사소송법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특사경을 남발하면 개인의 인권 침해, 병원의 진료권 침해가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사무장병원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후 단속·수사보단 사무장병원이 개설되지 않도록 하는 절차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불법개설 기관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는 계속되고 있다.
건보공단이 지난 16년간 적발한 불법개설 기관은 모두 1737곳으로,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규모는 2조9268억원을 웃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징수를 통해 환수된 금액은 2424억7400만원, 약 8.3%에 불과하다.
이윤학 건보공단 요양기관지원실장은 "특사경 도입은 불법개설 기관을 근절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수사권 남용이나 국민 기본권 침해 우려가 없도록 전문성을 보강해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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