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정치적 판단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정치 참여는 제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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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분별력을 기르게 하고, 이를 통해 정치 선동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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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교대 에듀웰센터에서 열린 'AI 시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직무연수 실습에서는 '고등학생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교사와 학생 4명씩 짝을 이뤄 이같이 찬반 토론을 벌였다.
기존 찬반 토론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번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은 '찬성-반대' 입장을 피력했던 참여자들이 1차 토론 후 역할을 바꿔 '반대-찬성'으로 2차 토론을 벌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양극화 해소와 상호 존중 문화 정립, 공존형 토론 역량 함양을 위해 개발한 토론수업 모델이다.
단순히 입장을 바꿔 토론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도록 해 공존과 협력의 가치를 배우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개발됐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쪽 의견만 고집하기보다는 반대편의 입장도 이해하도록 해 민주 시민을 양성하겠다는 게 시교육청 설명이다.
지금도 중·고등학교에서 토론수업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입장을 바꿔 재토론하는 방식으로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의 토론은 아닌 경우가 많다.
이번 수업에서는 '고등학생의 정치 참여는 금지해야 한다'는 데에 찬성했던 참여자들은 30분 만에 '허용해야 한다'로 바꿔 토론을 벌였다.
상대편이 근거로 들었던 자료와 똑같지 않아도, 본인만의 생각을 정리해 설득력을 갖추고 논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며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토론 참여자인 남궁솔 경동고 학생은 "역할이 바뀌면서 나의 가치관과 다른 부분을 볼 수 있게 됐다"면서 "특히 역할을 바꾼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합의문까지 작성해 정리된 사항을 보니 '서로 달랐던 우리들의 의견이 이런 일치점을 봤구나'란 생각이 들어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에서는 1차 토론과 입장 전환을 위한 숙의 시간, 2차 토론을 거쳐 마지막 단계에서는 '합의안'을 작성하도록 한다.
서로 의견을 바꿔 생각을 나누는 동안 합의할 수 있었던 사항, 그럼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사항, 제안할 점 등을 작성해 서로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협하고 상호보완할 점까지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이번 토론에서는 '정치적 성숙·미성숙의 기준은 모호하므로 기준서 제외하도록 한다'와 '교외 정치 참여는 개인 선택의 영역이므로 간섭할 수 없다' 등은 합의에 도달했지만, 교내 정치 참여 영역 및 방법은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교사들은 역지사지 토론이 학교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 교사는 "찬반 주제에서 교사는 어떻게 객관성을 갖고 교육할 수 있나"라고 물었고 또다른 교사는 "역지사지 토론 수업을 위한 충분한 수업시수가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취지로 질문했다.
주제 선정과 민감한 주제에 대한 학부모 민원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은 나와 다른 생각들도 '일리 있다'고 생각하며 내 입장은 어떻게 수정·보완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공부법"이라면서 "AI환경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확산하도록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8월에는 경기도교육청과 역지사지 공존형 대토론회를 열고, 전국 교육감에도 참여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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