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 “평화 위해서 러와 외교” 말하자
젤렌스키 “무슨 외교 말하는 것이냐”
트럼프 “당신이 가진 카드 없다” 면박
친 트럼프 그레이엄 공화 상원의원
젤렌스키에 “미끼 물지 말라” 조언
불리한 처지서 ‘바른 말’ 한 것 패착
EU “자유세계 새 지도자 필요해져”
유럽 정상, 안보 홀로서기 등 논의
러 “젤렌스키 방미는 완전한 실패”
“나는 미국 국민들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오래 끌었다.
”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오래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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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연합뉴스 |
통상 10분 안팎으로 끝내는 회담 전 공개 모두발언 행사를 50분간 중단시키지 않고 마지막 10분 동안은 거친 설전을 벌인 이유가 함축된 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J D 밴스 부통령과 함께 일부러 젤렌스키 대통령을 자극해 회담을 파국으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외교적 매복(diplomatic ambush)’을 꾀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에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40분간 회담 분위기는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그(젤렌스키)의 혐오 때문에 내가 협상을 타결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했고, 밴스 부통령이 이어받아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려 한다고 말하자 이를 참지 못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하나 물어도 되겠느냐”며 “J D,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불법 병합한 이후 체결된 민스크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밴스 부통령이 “무례하다”, “고마워할 줄 모른다”며 발끈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여기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가진 카드는 없다” 등 젤렌스키 대통령의 궁색한 상황을 상기시키려는 발언을 퍼부었다.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치닫자 회담에 배석한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가 손으로 이마를 짚는 등 절망에 빠진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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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논쟁에 이마 짚은 주미 우크라 대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광물협정 서명을 위한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J D 밴스 부통령(오른쪽)이 손을 들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하고 있다. (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정상들 간 언쟁이 이어지자 회담장에 배석한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오른쪽)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마를 짚는 모습. 워싱턴=EPA연합뉴스, X 캡처 |
그레이엄 의원은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라”고 충고했었다며 “이제는 젤렌스키와 다시 거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다른 나라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는 얘기를 주로 한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매우 불리한 처지에서도 참지 못하고 ‘바른 말’을 한 것이 패착이었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건으로 우크라이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러시아 쪽으로 기운 미국의 안전보장 없는 전쟁 휴전을 이끌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복싱 애호가인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크라이나 복싱 챔피언 올렉산드르 우식의 챔피언 벨트까지 가져가 자신의 오른쪽 뒤편 테이블에 놓아둔 것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하지만 조롱을 당하고 오찬도 하지 못한 채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자유진영 동맹국을 공개적으로 면박주고 침공의 주범인 푸틴 대통령을 두둔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미국이 더 이상 자유 진영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 자유세계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럽인들의 몫”이라고 적었다.
가브리엘 아탈 전 프랑스 총리 역시 “오늘밤 미국은 자유세계의 리더라고 말할 자격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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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중 설전 모습. AFP연합뉴스 |
유럽 정상들은 2일 영국 런던에 모여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머리를 맞댄다.
회의에는 젤렌스키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협정 압박에 대한 대응 방안,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방안, 유럽의 자력갱생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 테이블에선 유럽 홀로서기의 방안으로 최근 거론되는 자체 핵 억지력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일부 유럽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종전 구상을 지지하고 있어 통일된 유럽의 대응책이 나오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 내 트럼프 인맥으로 꼽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서방의 분열은 우리 모두를 약하게 만들고 우리 문명의 쇠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 동맹국이 참여하는 긴급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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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2월28일, 네오나치 정권의 수장인 젤렌스키의 워싱턴 방문은 키이우 정권의 완전한 정치적·외교적 실패”라며 “워싱턴 방문 기간, 젤렌스키의 터무니없이 무례한 행동은 그가 무책임한 전쟁광으로서 국제사회에 대한 최악의 위협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반응은 알려진 바 없지만 크레믈궁의 의중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영국 가디언에 “푸틴 대통령에게 이번 회담은 전쟁 시작 이후 그 어떤 군사작전보다 커다란 승리”라고 언급했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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