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연방대법원은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 규모의 대외 원조 프로그램을 동결해 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신청을 기각했다.
5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국제개발처(USAID)의 대외 원조 프로그램에 배정된 예산의 집행 여부를 둘러싼 소송의 결정을 선고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을 통해 USAID의 대외 원조 프로그램 중단을 명령했다.
이에 USAID 직원 노동조합은 “연방정부가 내린 자금 지원 중단 조치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수도 워싱턴을 관할하는 연방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 아미르 알리 판사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가 “1심 법관의 그릇된 결정을 바로잡아 달라”며 2심을 건너뛰고 대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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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가운데)이 4일(현지시간) 연방의회 의사당 본회의장에 앉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을 듣고 있다. 왼쪽은 동료인 브렛 캐버노 대법관, 오른쪽은 2018년 은퇴한 앤서니 케네디 전 대법관. AP연합뉴스 |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9명 중 무려 6명이 공화당 정권 시절 기용된 보수 인사이고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진보 대법관은 3명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기엔 보수 절대 우위 구도인 셈이다.
그런데 이날 대법원의 선고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대법관 5 대 4 의견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기각하고 1심 판사의 효력 정지 결정을 계속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USAID의 대외 원조 프로그램 예산 20억달러는 당분간 그대로 남아 있게 됐다.
USAID를 ‘세금이나 낭비하는 불필요한 기관’이라고 여기는 트럼프 입장에선 대법원에 배신감을 느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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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왼쪽)이 그가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배럿 대법관은 강경한 보수 성향 법조인으로 통한다. 연합뉴스 |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그 주인공이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취임한 로버츠는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긴 하나 ‘대체로 중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배럿은 트럼프가 직접 발탁한 인물로 “낙태는 여성의 기본권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강성 보수 인사로 꼽힌다.
배럿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2020년 10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이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2020년 9월18일 암으로 사망하며 대법원에 갑자기 결원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대선이 임박했는데 임기도 얼마 안 남은 대통령의 대법관 인사권 행사는 무리”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백악관은 배럿의 임명 절차를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대법관 등 연방법원 판사의 인준 권한을 가진 상원의 다수당이 여당인 공화당이란 점도 트럼프에게는 호재였다.
상원이 민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안 표결을 강행하면서 배럿은 긴즈버그 사후 불과 1개월여 만인 2020년 10월27일 대법원에 입성했다.
이후 “낙태는 헌법상 여성에게 주어진 기본권이 아니다”는 대법원 판결 선고를 주도하는 등 강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왔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