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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이고 안들리는 병훈씨, 공소기각 받은 사연[국선변호 리포트]

편집자주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4명이 국선(國選)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
국선 변호는 주로 경제적 능력 등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하기 힘든 피의자·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변호인 조력권)를 보장하려고 만든 제도다.
그런 만큼 ‘국선 변호 스토리’에는 우리 사회의 환부와 사각지대가 많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아시아경제의 첫 리포트는 앞 못 보고 못 듣는 병훈씨(가명)와 박철수 변호사의 사례다.


#1. 2023년 5월 19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역사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한 남자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비키라니까 놔라, 놔” “내가 가겠다는데 막는 이유가 뭐냐!” 남자는 귀에 꽂은 보청기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출동한 경찰관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이라니까요. 이러시면 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 몇분쯤 지났을까. 경찰관은 검은색 방범 장갑을 꺼냈다.
상해 방지용 장비다.
결국 남자를 연행하겠다는 신호였다.


#2. “으악” 경찰관들이 남자를 붙잡은 순간, 남자가 경찰관의 오른쪽 팔을 물었다.
방범 장갑이 뜯어질 정도였고, 경찰관은 전치 3주 상처를 입었다.
남자는 현행범으로 연행됐다.
중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김병훈(가명·59)씨가 유치장에 하루 구금된 사연이다.
경찰은 병훈씨를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재판에 넘겼다.
병훈씨는 변호사를 살 돈이 없었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이 국선전담 변호인인 박철수·박유영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박철수 변호사는 병훈씨의 상태에 주목했다.
병훈씨는 파킨슨병까지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경적에 해당하는 100㏈(데시벨) 넘는 소리만 들었고, ‘빛’만 보였다.
점자블록도 지팡이를 세게 내리쳐야만 알아챌 수 있었다.
박 변호사와 병훈씨의 ‘특별한 소통’이 시작됐다.
손바닥에 질문을 적고 답하는 필담이었다.



연행된 그날 병훈씨는 장애인 택시를 불렀다.
기사는 엉뚱한 지하철 출구에 내려줬다.
그때부터 병훈씨는 혼란스러웠다.
길을 잃고 헤맸다고 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을 붙잡았고 점자블록을 막아서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누군가’의 팔을 깨물었는데, 알고 보니 경찰관이었다는 것이다.
병훈씨도 갈비뼈가 4대나 부러졌다.


경찰에서 50여분 조사를 받고 석방된 병훈씨는 경찰로부터 “장애 진단서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 내겠다 버텼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약점을 이용해 선처를 구하긴 싫었다.
’ 병훈씨는 박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정적으로 일이 꼬인 계기였다.
병훈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서 무죄 받고 경찰 잘못을 알리고 싶었다’고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 대로 일은 풀리지 않았고 결국 기소가 됐다.


박 변호사는 병훈씨 재판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①장애인인 병훈씨 대한 경찰의 보호조치는 적절했나 ② 연행과정에서 ‘미란다원칙’은 고지됐냐였다.
박 변호사는 “피고인은 부적합한 보호 조치에 저항한 것” “(경찰관이) 자신을 납치하는 것으로 여기고 팔을 깨문 것으로 보여 정당방위”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또 “경찰관이 병훈씨가 장애인임에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대했고, 병훈씨는 경찰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진압하듯 끌고 나가 수갑을 채우고 체포했다”며 “공권력 남용”이라고 변론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 경찰관을 법정 증인으로 불러냈다.
그 자리에서 경찰관에게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가 같이 있는 분들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절차가 있느냐”는 취지로 물었다.
경찰관은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병훈씨는 장애로 인해 상황을 ‘오해’했고, 연행 과정의 ‘적법 절차’는 제대로 지켜졌다고 볼 수 없었다.
박 변호사는 경찰 역시 상황을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병훈씨가 그 정도로 심한 장애인인지 몰랐을 것이라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검은 수사심의위를 열어 병훈씨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기로 결론을 모았다.
그에 따라 법원은 병훈씨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려 사건을 종결지었다.
박 변호사는 “국선 변호를 하다 보면 화나 슬픔이 많은 분들을 피고인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이 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란다 원칙은?
미란다 원칙은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비록 강력범죄 피의자라 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이 규정한 피의자 권리가 고지되지 않은 채 체포된 사실이 드러나면 범인에 씌워진 모든 혐의가 무효가 되는 강력한 인권보호 장치다.
우리나라에는 1997년 1월 도입되었다.
1963년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에르네스토 미란다의 재판 결과 판례로 확립됐다.
에르네스토 미란다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경찰로부터 묵비권 등의 권리를 통보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그의 변호인측은 미란다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1966년 결국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대법원은 당시 5대 4로 “미란다의 자백을 유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딴 미란다 원칙은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으로 확립됐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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