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에 군대를 보내 이듬해인 1863년 6월 수도 멕시코시티를 점령했다.
정통성을 갖춘 공화국 정부가 지방으로 피신해 항전을 이어가는 사이 나폴레옹 3세는 공화정을 대체할 제정을 선포했다.
이어 자신과 절친한 오스트리아 황실의 일원인 막시밀리아노 1세를 멕시코 황제 자리에 앉혔다.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막시밀리아노 1세를 멕시코 국가원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프랑스를 향해 “미국은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당장 철군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미국의 결기에 놀란 프랑스는 1867년 멕시코에서 자국군을 완전히 철수시켰다.
허수아비가 된 막시밀리아노 1세는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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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추앙을 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왼쪽)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세계일보 자료사진 |
중남미의 대표적 산유국인 멕시코의 석유 산업은 루스벨트 취임 전까지도 유럽과 미국 등 외국계 자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1930년대 들어 멕시코 정부가 자국 석유 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함에 따라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가 험악해졌다.
당시 세계 패권국인 영국은 단교 조치까지 취해가며 멕시코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의 태도는 달랐다.
루스벨트는 차분하게 멕시코 정부와의 협상에 나섰다.
마침내 1941년 미국은 멕시코산 석유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권리를 인정했다.
동시에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양국 간 협정이 체결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11월 당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백악관에서 바이든과 만난 오브라도르는 “내가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이 두 명 있다”며 링컨과 루스벨트를 꼽았다.
그는 링컨을 “프랑스의 침략으로부터 멕시코를 구해준 은인”이라고 규정했다.
루스벨트에 대해선 “대통령 재직 시절 존경과 우정을 바탕으로 멕시코와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며 “20세기 최고의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찬사를 바쳤다.
꼭 미국·멕시코 관계 개선에 기여한 점을 떠나 링컨과 루스벨트는 둘 다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2024년 미국 정치학자들을 상대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누가 제일 위대한가’라고 물은 설문조사 결과 링컨이 1위, 루스벨트가 2위를 차지한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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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연방의회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2024년 다시 대선에서 이겨 백악관에 복귀한 뒤로는 멕시코를 상대로 25% 관세 부과 조치를 내렸다.
미국 플로리다 반도와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둘러싸인 널찍한 바다 명칭을 기존에 굳어진 ‘멕시코만’(Gulf of Mexico)에서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고쳐 멕시코에 굴욕감을 안겼다.
멕시코 국민 입장에선 ‘전생에 우리나라와 무슨 원수를 졌길래’ 하며 곤혹스러워 할 법하다.
링컨이나 루스벨트와 달리 트럼프는 멕시코에서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훗날 미국인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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