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이 집권 한 달여 만에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관세정책과 동맹국을 향한 방위비 외교에 유럽 일부 국가는 "미국은 더는 동맹이 아니다"라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미국 도움 없이 스스로 방어할 힘을 키워야 한다는 자강론이 확산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한 특별 정상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지원과 유럽 방위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젤렌스키는 이날 브뤼셀에 도착해 "전쟁 첫날부터 지금까지, 또 지난주에도 내내 우크라이나와 함께해 정말 감사하다"며 "EU와 각국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에 "지금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든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라며 강력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유럽은 러시아보다 강하다"며 "군사·경제 모든 면에서 러시아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유럽연합(EU)은 자강의 핵심인 국방력 강화를 위해 일명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도 내놨다.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촉진하기 위해 최소 8000억 유로(약 1229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한다는 게 골자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구체적 방안으로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국방 부문에 대한 공공자금을 적극적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EU 재정 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국가별 예외 조항을 발동하자고 제안했다.
새 정부 구성을 논의 중인 독일 정치권도 군비 확충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1천조원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특별예산 편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수당인 기독민주당(CDU) 내에선 2011년 폐지한 징병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영국 역시 현재 GDP의 2.3%인 국방비 지출을 2027년까지 2.5%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2027년부터 연간 134억파운드(24조3천억원)씩 국방 지출이 늘어난다.
영국 정부는 필요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해외 원조 예산을 2027년 GDP의 0.5%에서 0.3%로 삭감할 예정이다.
북유럽 덴마크 역시 대대적인 재무장을 예고하며 올해와 내년 국방비를 500억 크로네(약 10조원)를 추가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국방비를 10년간 총 1900억 크로네(약 38조원) 증액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유럽 자강론을 오래전부터 주장한 프랑스는 현재 505억 유로(약 78조원) 수준인 국방 예산을 2030년까지 연간 680억 유로(약 106조원)로 확대한다는 게 원래 목표였으나 최근의 국제 정세 변화로 목표치 상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은 6일(현지시간)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국방력 증대를 가속해야 한다며 "우리 군이 다양한 임무 수행에 적합한 수준의 체력을 가지려면 연 900억 유로(약 140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프랑스는 주변국들에 '핵우산' 제공 방안을 검토하는 등 유럽의 안보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유럽을 위한 '프랑스 핵우산론'을 주장해 온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5일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이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유럽 일각에서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5일 열린 EU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며 "핵우산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안보 우산'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로 EU가 우크라이나 지원과 독자적 방위력 강화 등 '재무장 계획'을 추진하면서 채권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유럽이 재정준칙을 완화해가며 방위비를 늘리기로 하자 유로화 가치가 올해 들어 최고치로 뛰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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