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과 우크라이나 안보에서 발을 빼는 가운데 유럽연합(EU) 정상들이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 8000억유로(약 1248조원) 규모 방위비를 조성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에는 일단 합의했다.
그러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반대로 우크라이나 지원 성명은 26개국 공동 발표에 그쳤다.
6일(현지시간) 폴리티코 유럽판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EU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특별정상회의에서 11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26개국 정상들은 "EU는 유사 입장국 및 동맹들과 협력을 통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화된 정치·금융·경제·인도·군사·외교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계속 전념할 것"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와 기존 조처 집행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26개국은 올해 EU 및 각국이 지원하기로 이미 약속한 원조 외에도 "방공체계·탄약 및 미사일 제공 등 우크라이나의 시급한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없이는 협상이 있을 수 없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구체적 목표 없이 향후 군사 지원을 약속했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리는 EU가 도전에 맞서고, 유럽의 방위를 구축하고, 우크라이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당초 EU는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내용을 27개 회원국이 모두 동의한 공동성명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판까지 오르반 총리를 설득하지 못하며 헝가리가 빠진 26개국 입장을 별첨 문서 형태로 발표했다.
오르반 총리는 친러 성향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또 소식통에 따르면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올해 우크라이나에 최소 200억유로 군사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EU 회원국들의 뜻을 모으려 했으나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EU는 27개국 만장일치로 채택된 공동성명을 통해 유럽 방위력 강화 계획을 밝혔다.
오르반 총리도 이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성명에는 "전반적인 방위 태세를 강화하고, 전략적 의존성을 줄이며, 중요한 역량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며 유럽의 안보를 더는 미국에만 기대지 않겠다는 인식을 담았다.
EU는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 최대 8000억유로 규모의 계획을 마련했다.
EU 예산을 담보로 회원국들에 무기 조달을 위해 1500억유로 대출을 제공하고, EU 재정 규칙을 완화해 6500억유로 규모 신규 국방비 지출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다만 개별 회원국 정부 승인을 위한 세부 협상이 필요하다.
가디언은 각국이 재정준칙 유예안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있어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유럽은 이 도전, 이 군비 경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겨야 한다"며 "유럽은 러시아와의 군사적·재정적·경제적 대결에서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매우 감사하다"며 새로운 방위비 지출의 일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이 발을 빼면서 유럽만으로 우크라이나 지원과 유럽 방위를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의 약 40%는 미국이 담당했다.
이날 EU특별정상회의가 진행되던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국가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그들을 방어하지 않겠다"며 압박했다.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프랑스 핵우산론'을 꺼내 들었다.
이날 회의에서 리투아니아, 폴란드 정상은 프랑스의 핵우산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보였다.
반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유럽이 미국의 개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유럽 자체적인 논의가 미국의 유럽 안보 '퇴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라고 설명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정상 등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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