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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은 침묵, 北은 ‘어머니로 헌신’ 강조… 한반도 여성인권 현실 [3.8 여성의날]

매년 3월8일을 전 세계가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기념하는 가운데, 한국과 북한 정부의 여성의 날 관련 행보가 눈길을 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남한에서는 침묵하고, 북한에서는 전통적 여성상을 강조하며 헌신을 요구했다.
다른듯 하지만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국제적으로 한참 못 미치는 여성인권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UN 여성기구가 올해 여성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베이징 선언 30주년 기념 여성 권리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에 전 세계 정부 4곳 중 1곳에서 여성 권리에 대한 반동 움직임(백래시)이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역시 그 여파를 톡톡히 겪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광장에서 20∼30대 여성의 두드러진 기여도에 불구하고 조기 대선 국면에서 여성 정치나 정책 관련 움직임은 소극적인 편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 "3·8국제부녀절 115돌 기념 공산주의 어머니 영예상 수상자들과 여맹일꾼들, 여맹원들의 상봉모임이 지난 4일 여성회관에서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韓, ‘페미니즘 백래시’ 대표국가다운 무관심

한국에서 여성의 날은 여전히 큰 존재감이 없다.
정부 차원의 유의미한 메시지가 발표되지 않고, 민간 기업이나 시민·여성단체들이 개최하는 기념 행사 정도에 그친다.
여성가족부에서 기념 메시지를 올리고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지만 사실상 형식적인 수준이다.
성평등 관련 각종 국제 지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최하위 수준임을 방증하듯 ‘여성’ 관련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된 지 오래다.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평일인 이날 정치·사회 분야의 주요 일정에도 여성의 날 관련 행사는 단 1개뿐이었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매년 진행하는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행사’가 전부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여성도 행복한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표어를 써서 들어보였다.
민주당 여성위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한국여성대회에 부스를 마련해 참여한다고 전했다.

조국혁신당은 여성의 날을 맞아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 내 여성 청소노동자와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앞서 지난 4일 진보당은 여성의 날 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온 모든 현장에 여성은 존재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김재연 상임대표)이라고 밝혔다.

여성의당은 ‘3·8 여성의날 기념 10대 여성의제 해결 요구 대행진’을 8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 보신각에서 진행한다.
여성의당 박진숙 비상대책위원장은 “조기 대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에서 여성을 지우겠다고 선언하는 행보를 보이는 지금, 대선 공약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여성의제를 선정하고 해결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의당은 한국의 뿌리 깊은 성별 불평등을 개선하고, 남성이 과대 대표되는 정치 구조를 바꾸겠다는 포부로 등장한 소수 정당이다.

이밖에 국회에서 여성 의원들이 출근할 때 장미꽃을 주는 행사 등이 있었는데, 단순한 사진 촬영용 이벤트 이상의 실질적 메시지나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北 “가정·국가에 헌신하는 여성 되길”

북한은 여성의 날을 ‘국제 부녀절’로 부른다.
매년 이맘때 북한은 여성들에게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참다운 여성 혁명가”가 될 것을 강조한다.

조선중앙통신은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펼친 여성 친화 정책을 열거한 뒤 여성들이 “사랑하는 자식들의 어엿한 성장과 가정의 화목, 조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뿌리가 되고 밑거름이 되어 성심을 다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국제 부녀절을 맞아 진행된 공산주의 어머니 영예상 수상자·여성 사회주의 애국공로자들과 농업근로자들의 상봉모임 개최 소식을 전하며 전통적 여성 역할에 충실한 수상자들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5명의 자녀를 키운 어머니 영예상 수상자가 “여머니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라는 식이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적어도 국제 부녀절을 국가적 명절로 크게 기념하긴 한다.
다만 이를 북한의 여성 정책을 과시해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고, 당과 김 위원장에 대한 여성 충성을 강요하는 계기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기념이라 보기는 힘들다.

북한의 경우 전 세계가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완전히 왜곡해 적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여성의 날(IWD)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IWD는 전 세계 여성의 발전을 위해 제정된 특별한 날로, 성평등을 가속화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성별 임금 격차, 리더십 대표성 부족, 성별 기반 폭력, 교육·기회 불평등과 같은 문제에서 성 불평등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포괄적인 목적이다.

◆공휴일인 나라만 27개…주한 대사관들도 잇단 기념행사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벌인 시위를 기념하는 날로, 유엔(UN)이 공식 지정했다.

전 세계에서 27개국이 이날을 공휴일로 기념한다.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부르키나파소, 캄보디아, 중국(여성 한정), 쿠바, 조지아, 기니비사우, 에리트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라오스, 마다가스카르(여성 전용), 몰도바, 몽골, 몬테네그로, 네팔(여성 한정), 러시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간다,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잠비아 등이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의회가 2019년에 국제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한국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들도 여성의 날 관련 행사를 열거나 자국에서 공휴일인 경우 대사관 휴무를 고지했다.
올해는 3월8일이 토요일인 탓에 전날인 7일 휴무를 실시했다.

주한 유럽연합대표부는 ‘2025 여성의 날’ 행사로 안보-방위 분야의 여성들을 초청해 포럼을 열었다.
‘보다 회복력 있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말까지 신청을 받아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개최했다.

주한 인도대사관은 여성의 날을 기념해 9일 여성 건강에 초점을 맞춘 요가, 명상 특강을 연다고 밝혔다.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다.
주한 영국대사관은 6일 저녁 영국과 연결고리가 있는 각계 여성들을 초대해 인적 교류 기회를 제공했다.

이 밖에도 각 대사관들은 여성 청소년 대상 ‘1일 외교관 체험’ 등 다양한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에 나가 있는 한국 재외공관들은 올해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하는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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