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과일인 사과가 한반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후 변화로 국내 경작지가 더는 사과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을 변한 탓이다.
그 여파는 최근 사과 생산량과 가격에도 뚜렷한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수년간 사과 생산량은 처음으로 침체 일로를 걷고 있으며, 사과 소매가는 급등하고 있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농넷)에 따르면 사과 가격은 지난 수년간 급등했다.
2016년 사과 1kg당 산진공판장 평균 가격은 1511원이었다.
이 가격은 2019년까지 거의 변동하지 않았지만, 2020년 2208원으로 급등하더니 지난해엔 3523원으로 치솟았다.
올해 초 평균 가격은 4542원에 달한다.
지난 4년간 2배 이상 비싸진 셈이다.

사과 가격의 변동은 국내 사과 생산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통계청은 2000년부터 매년 과일 생산량을 집계해 왔는데, 그중에서 사과는 첫 20년간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한 2020년 42만톤(t)으로 급감하더니, 이듬해엔 평년 수준을 회복하는 듯했다가 최근 2년 사이 다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 국내 사과 생산량은 2000년대 수준으로 후퇴할 전망이다.
한반도 기후 변화가 사과 작황 부진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과는 서늘한 기후에 적합한 작물로, 보통 봄 사과는 기온 15~16도인 4월 중순에 꽃이 피고 6월에 열매를 맺어 수확한다.
하지만 최근 봄 날씨는 과거와 전혀 다른 패턴을 보인다.
일례로 사과 흉년이었던 2023년의 경우, 3월에 갑자기 따뜻해져 사과꽃이 훨씬 일찍 폈다.
그러나 이후 수일 만에 꽃샘추위로 영하 2도까지 하락하며 사과꽃이 얼어붙었다.
봄 사과 흉년의 문제가 변덕스러운 봄 기온에 있다면, 여름 사과의 복병은 장마다.
2020년은 평년보다 훨씬 긴 장마의 영향으로 사과 열매에 탄저병, 갈색무늬병이 발생해 많은 과육이 버려졌다고 한다.
이 문제는 2022년 한국농촌경제원이 발간한 '과일 수급 전망과 동향'에서 이미 거론된 바 있다.
당시 경제원은 "봄철 저온 피해, 긴 장마 영향"을 과실 부진의 원인으로 꼽았다.
또 점점 따뜻해지는 한반도 기후로 인해 사과 재배 가능 지역도 점차 줄고 있다.
경제원에 따르면 수십년 전만 해도 사과는 경북 지역에서 주로 재배했지만, 이제는 강원과 경기의 재배면적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재배 가능 면적으로 보면 감소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원은 "사과 재배면적은 2022년 3만4300헥타르(ha)였지만, 2031년엔 2만9100ha로 줄어들 것"이라며 "매년 1.8%가 감소하는 꼴"이라고 전망했다.
사과 생산량이 줄면서 한국인의 식습관도 변화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경제원은 "국내 생산량 감소로 한국인 1인당 사과 소비량은 2022년 10kg에서 2031년엔 9.2kg으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 확대로 사과 생산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스마트 과수원은 실시간 모니터링 기술과 디지털 기술로 과일나무의 일조량을 조절하고 병충해를 막는 시설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강원 지역에 20ha 면적의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올해엔 5곳을 신설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전국 모든 농가가 비싼 스마트 시설 투자 비용을 감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결국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도 환경 영향을 최소화한 새로운 농법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전지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 대응 농업 연구소장은 지난달 발표한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과수 산업 변화와 중장기 과제' 보고서에서 "온난화 진행으로 한반도 기온은 10년마다 0.2도씩 상승 중”이라며 “봄철 평균 기온 변화가 높아지고 봄꽃 개화일이 빨라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재배지 변동 예측으로는 사과 재배 적지는 전국적으로 거의 사라질 전망”이라며 “기후 변화에 대응한 새 과수 품종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라고 덧붙였다.
전 소장은 "사과 등 8개 작목은 이미 48품종을 개발해 보급 중"이라며 "농산물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완화하기 위한 재배 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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