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피해자인데, 왜 저희에게 책임을 묻죠?" "어렵게 준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 건 정부입니다.
" "이미 깨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죠."

지난 8일 전국의대학부모연합(전의학연) 주최로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의대생 대상 '의사의 길 희망을 처방합니다' 세미나에서 만난 의대생들은 이런 얘기를 쏟아냈다.
이달 말까지 의대생들이 수업에 복귀한다면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정부의 발표 직후여서 그런지, 토요일 저녁임에도 전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학생들로 행사장은 북적였다.
강단에 선 배장환 전 충북대병원 교수(좋은삼성병원)가 과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의정 갈등 국면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진정한 전문가로 성장하는 시기로 삼으라"고 조언했지만, 학생들은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수도권 의대를 휴학 중이라는 한 24학번 학생은 "우리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의대 증원과 의료 정책 변화로 학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선택한 직업, 진로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혼란을 겪고 있다"며 "몇몇 학교에선 유급당하고 등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피해를 받고 있는데, 마치 우리가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지 말라"고 토로했다.
호남권 의대를 휴학 중인 본과 2학년 학생은 "이전엔 당연히 임상의사가 될 거라 생각하고 공부만 해왔는데, 앞으로 어떤 진로를 택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26학번 증원을 한시적으로 '0명'으로 하더라도 27학번 이후 다시 증원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또 다른 의대 24학번 학생은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원 동결보다도 의대 수련환경 개선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철회"라며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진 만큼 수업 복귀를 전제로 한 증원 원점화 방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올해 신입생 중 일부는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선배들이 복귀하지 않은 상황에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의대생 학부모는 "25학번은 증원 혜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뜩이나 위축돼 있지만 도제식 교육, 밀접한 선후배 관계 등 의대 특유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라며 "선배들, 전공의들이 먼저 복귀하지 않는 한 단체행동을 거스르기 불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정부와 대학이 24학번, 25학번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하는 '더블링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내놓은 학사운영 모델은 결국 교육과정을 압축해 빨리 졸업하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부모로서 자녀가 이제는 수업에 복귀해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충분히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의사가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공감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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