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종말… 희생에 감사”
“프랑스 전투(Battle of France)는 끝났습니다.
나는 영국 전투(Battle of Britain)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6월18일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프랑스를 굴복시킨 나치 독일의 영국 침략이 임박했음을 경고한 것이다.
섬나라 영국을 겨냥한 독일군의 공격은 전투기와 폭격기를 활용한 공중전의 형태를 띄었다.
영국 공군은 약 3개월에 걸친 영국 전투 기간 독일 공군의 공습을 잘 막아내 찬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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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헤밍웨이(1919∼2025) 전 영국 공군 대령.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 공군 간의 공중전인 ‘영국 전투’ 참전용사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영국 공군 제공 |
영국 공군은 성명에서 “고인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며 “2차대전 기간 자유를 위해 싸운 모든 사람들의 희생을 가슴 아프게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헤밍웨이는 1919년 7월 당시만 해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영국 공군에 입대한 헤밍웨이는 항공기 조종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마침내 1939년 장교로 임관함과 동시에 정식 조종사가 되었다.
2차대전 발발 직후 헤밍웨이가 속한 공군 부대는 프랑스에 주둔하며 독일군의 공세에 맞서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엄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프랑스 전선의 상황이 극도로 악화하며 영국은 1940년 5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에 있던 자국군 병력과 장비를 영국으로 수송하는 이른바 ‘?케르크 철수 작전’을 단행했다.
이때 헤밍웨이는 영국 함선이 영불해협을 건너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공중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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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사용한 낡은 전투기 앞에서 2차대전 참전용사 존 헤밍웨이 전 공군 대령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17일(현지시간) 10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영국 공군 제공 |
독일 공군은 그해 7월을 시작으로 10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영국 본토 공습에 나섰다.
처칠이 ‘영국 전투’라고 명명한 바로 그 공중전이다.
이 기간 헤밍웨이는 거의 매일 전투기를 몰고 상공에서 독일 군용기와 대치하며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엄청난 수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잃은 독일은 공중전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영국 전투가 끝난 이듬해인 1941년 7월 헤밍웨이는 독일 군용기 격추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훈비행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을 받았다.
1944년 영국군, 미군, 캐나다군이 주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 영토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됐다.
이후 헤밍웨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이 독일군 잔당을 격퇴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공군에 남은 그는 대령까지 진급했으며 1969년 9월 50세의 나이로 제대했다.
영국 전투는 2차대전 발발 후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처음 겪은 패배였다.
훗날 처칠은 영국 전투에 참전한 조종사를 향해 “인류의 전쟁터에서 그렇게 적은 사람들(조종사)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큰 빚을 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찬사를 바쳤다.
이날 헤밍웨이의 타계 소식을 접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고인을 비롯한 모든 영국 공군 조종사들의 용기가 2차대전을 끝내고 우리의 자유를 지켰다”고 밝혔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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