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습(과한 습도)으로 죽었다면 뿌리가 이렇게 하얗지 않을 텐데, 나쁘지 않습니다"

17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의 반려식물 클리닉에서 기자가 키우는 식물에 대한 진료를 받아봤다.
절차는 사람이 가는 병원과 비슷했다.
반려식물 치료 동의서를 작성하고, 식물이 언제부터 어떤 증상을 보이고 있는지 등을 상세히 적어내야 했다.
이곳에서 전문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윤신혜씨는 기자가 작성한 서류와 반려식물의 겉모습을 살펴보고, 기자에게 '물은 얼마나 자주 주는지' '햇볕은 잘 드는 곳에서 키우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어보며 기록했다.
기자는 윤씨에게 '식물의 뿌리가 아직 살아있으니 더 지켜보고 물을 자주 주라'는 진단을 받았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우리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9월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반려식물을 기르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4%에 달했다.
농진청은 인구에 비례해 환산했을 때 국내에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인구가 약 1745만명일 것으로 추정했다.
연령별 조사결과를 보면 30대 이하에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37.2%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어 60대 이상(34.6%), 50대(15.0%) 순이었다.
과거 식물을 키우는 일은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처럼 여겨졌다.
또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취미생활이나 주부들의 여가생활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외로움'이 사회적 코드가 된 요즘 1~2인가구와 MZ세대 젊은층에서 식물을 반려로 들이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반려식물을 치료할 수 있는 클리닉과 병원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시는 종로구·동대문구·은평구·양천구 등 8개의 자치구에서 반려식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선 일종의 종합병원 개념인 반려식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반려식물 치료사 윤씨는 "클리닉에 찾아오는 사람 중 젊은 분들이 가장 많다"며 "다양한 식물을 갖고 오고 클리닉 예약도 적극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예약 당 식물 3개로 제한을 두었는데도 많게는 5개씩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에서 반려식물을 기르고 있는 20대 직장인 김하나씨는 "이전에 선물 받은 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어버린 경우가 있었다"며 "클리닉에서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서 식물을 오랫동안 키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젊은층이 반려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부르는 발이 '식집사'이다.
식집사가 늘어나면서 반려식물 산업 규모도 증가한다.
농진청은 현재 반려식물 산업 규모를 약 2조4215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봄이 코앞에 온 요즘, 주말에 과천 꽃시장이나 서울 헌인릉 꽃시장 등 나무와 꽃을 도매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장들에는 방문 인파와 차량이 밀려들고 있다.
김광진 농진청 도시농업과 과장은 "반려식물 기르기가 단순 취미를 넘어 국민 생활문화 일부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반려식물 기르기가 정서 안정에 주는 기대감이 큰 만큼 반려식물 산업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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