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대학 총장, 의대 학장들은 의대생 개별 접촉에 나서며 막판 설득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의대생 사이에선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부와 대학은 ‘집단 유급·제적 위기가 와도 구제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집단 유급·제적 사태 발생 시 각 개인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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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사 가운만 걸린채 텅 비어있다. 뉴시스 |
22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대학들은 학생들이 낸 2025학년도 1학기 휴학 신청서를 반려하고, 등록 학생을 집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연세대·고려대·경북대는 전날까지 등록하지 않은 학생은 미등록 제적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대학들도 24일, 28일 등 학생들에게 학교별 등록시한을 통보한 상태다.
의대생들을 개별 접촉해 설득 중인 대학 관계자들은 현재 수업 복귀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비수도권의 한 사립대 관계자 A씨는 “개인적으로 통화하면 강경한 학생은 많지 않다.
정부의 약속이 나오기 전에도 ‘2026학년도 3058명을 뽑는다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도 “학생들도 지쳐있고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이들이 실제 돌아올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목소리가 크다.
A씨는 “개별적으로 접촉하면 복귀를 망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학생들이 선뜻 판단은 못 한다.
학교별로 지침을 기다리는 것 같다”며 “다 같이 단체행동에 들어갔던 거라 수업 복귀도 다 같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대생들은 다른 학과에 비해 선·후배, 동기가 같이하는 활동이 많고 조직 문화가 폐쇄적이어서 단체 행동에 ‘반기’를 드는 것이 쉽지 않은 분위기란 설명이다.
◆폐쇄적인 의대 문화…독자 행동 어려워
실제 의대에서 조직적으로 수업 거부를 종용한 사례들은 잇따라 드러났다.
한양대 의대의 경우 지난해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거나 수업 출석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학생들을 압박해 교육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들은 수업을 듣는 학생은 소위 ‘족보’로 불리는 수업 자료를 얻을 수 없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 밖에 학생들을 특정 장소에 모아두고 휴학계를 쓰게 압박하거나 수업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증하게 한 대학 등 수업 복귀 사례들을 제보받아 경찰에 주기적으로 수사를 의뢰 중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꾸준한 수사 의뢰에도 단체행동 종용 행위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에도 서울대와 충북대, 건국대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건국대 의대생들은 “수업 복귀자는 더이상 동료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입장문을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단체행동 강요와 복귀 의대생에 대한 낙인찍기는 복귀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비수도권의 한 의대 관계자는 “의대생은 조직에서 찍히면 안 된다는 인식이 다른 학과보다 훨씬 크다.
2020년에 의대생들이 다 같이 국가고시를 거부했을 때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의 명단이 아직도 돌고 있다”며 “이런 것을 보며 ‘한번 찍히면 끝’이란 인식이 학습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복학 의대생의 수업 참여를 방해할 목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복학 학생을 공개적으로 비난·모욕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21일 의대생 2명을 불구속 송치하기도 했다.
◆학장들 “돌아와야” VS 교수들 “학생 겁박말라“
의대 학장들은 복귀를 호소 중이다.
전국 의대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는 21일 의대생들에게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 3058명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며, 40개 대학은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학교로 복귀할 때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들은 “21일 등록을 마감한 대학에서 등록과 복학에 유의미한 기류 변화가 있으며 상당수 학생이 복귀하고 있다”며 “복귀생은 철저히 보호할 것이니 안심해도 되며, 등록을 주저하는 학생은 더 이상 미루지 말기를 당부한다.
학업의 자리로 복귀하라”고 밝혔다.
반면 의대 교수들은 “휴학계 반려 합의는 비교육적 처사”라며 “학생 겁박을 멈추라”고 주장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휴학·복학 등은 당사자인 학생 개인의 일로, 신청과 승인 여부 등 그 어떤 것도 외부 압박으로 강행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휴학계 반려 합의는) 교육자로서의 직업적 윤리와 자율성보다 정부의 압박에 순종하는 책임 회피성 방편이고, 의대 선진화에 역행하는 비교육적 합의”라며 “유급, 제적 등을 거론해 당사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것 역시 총장이 할 조치는 아니다.
총장들은 일괄 휴학계 반려를 철회하고 학생 겁박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의 휴학 불허 조치를 비판하면서도 학생들에게는 우선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비대위는 “선배가 후배를 보호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다음 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지금 가장 피해를 본 이는 의대생이다.
비록 미완의 단계라 할지라도 학업의 전당으로 복귀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앞으로의 투쟁은 위의 세대에게 넘기고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학업에 매진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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