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1시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만난 60대 최미자씨가 산 중턱을 허탈하게 바라봤다.
‘산청 대형 산불’의 여파를 이날 새벽까지 받은 이곳은 까맣게 재만 남은 채 메케한 냄새가 가득했다.
소방과 산림청 등 관계 당국의 밤을 새운 진화 작업으로 일단 불씨는 꺼트렸지만, 최씨가 소유한 산의 감나무?밤나무들과 고사리밭, 컨테이너 등이 전부 불타버렸다.
산 아래 있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묘까지 불에 타 까맣게 변해버리자, 최씨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어제 불이 확산하면서 시부모님의 묘까지 태웠다.
우리 어머님, 아버님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울먹였다.
이어 “혹여나 잔불이 확산할까 봐 오늘 새벽 3시까지 노심초사하며 흙을 날라 불씨를 껐다.
몇 번을 넘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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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외공리에서 만난 60대 최미자씨 옆으로 고사리 밭이 화재로 까맣게 탔다. 장한서 기자 |
불이 난 산청군 시천면과 단성면 일대는 이날 해가 뜬 오전 10시쯤에도 산불의 영향으로 연무(煙霧·연기와 안개)가 가득 끼었다.
약 100m 떨어진 이웃 동네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을 곳곳은 화마의 상흔이 남았다.
인근 산들은 불길이 지나간 흔적으로 새까맣게 변했고, 산 아래 도롯가와 강둑까지 그을린 모습이었다.
아직 산불이 완전히 잡히지 않아 매운 연기가 코끝을 찔렀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냇물도 재가 뒤섞인 채 까만색을 띠고 흘렀다.
피해 지역에 있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대피해 길거리도 한산했다.
이날도 당국은 화재 진압에 매진했다.
산림 당국은 진화인력 2243명, 진화 차량 217대를 투입해 총력 진화에 나섰다.
아침 일찍부터 진화 헬기를 띄우려 했던 당국은 자욱한 연기와 안개 탓에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차츰 투입했다.
산청소방서는 덕산고등학교에 현장지휘소를 설치하고, 출동을 기다리는 펌프차 수십 대를 대기시켰다.
물이 다 떨어진 펌프차가 마을 도로에 있는 소화전에서 신속하게 급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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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외공리에 있는 한 무덤이 불에 탔다. 변세현 기자 |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휴양림에도 전날 밤부터 대피소가 마련됐다.
산청군 후평마을에 거주하는 김남곤(75)씨는 “어제 오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불씨가 전쟁터의 미사일처럼 정신없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며 “산에 연기가 가득 차서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타는 소리를 듣는 게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아 불안하다.
사람은 피했지만, 집은 못 피하지 않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불계마을 출신 황모(51)씨도 “전날 대피할 때 길 양옆으로 불이 붙어있었다”며 “불길 사이를 뚫고 대피하는데, 심장이 벌렁벌렁할 정도로 너무 무섭고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창녕군 소속 진화대원 3명과 일반 공무원 1명 등이 산청군 산불 화재 진압을 하다가 숨진 것과 관련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60대 주승남씨는 “타지에서 우리 마을을 위해 오셨는데, 사망했다는 소식에 눈물이 났다”며 “인명 피해 만큼은 없어야 했는데 이런 비극이 생겼다.
투철한 봉사 정신에 안타까움이 크고, 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청=장한서?변세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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